[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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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김사인(1955∼ )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

 
고단한 3월이 지나가고 있다. 얼었던 땅이 풀리느라 땅도 몸살을 하고, 차갑던 하늘에는 따뜻한 바람과 함께 뿌연 먼지가 가득이다. 봄이 오긴 온다는데 언제 올까. 봄도 오긴 온다는데 인생의 봄은 언제쯤 올까. 이런 생각의 끝에는 꼭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엄마, 바로 엄마다.

이 시를 쓴 시인은 남성이지만, 작품은 꼭 엄마를 닮았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엄마는 아픈 엄마다. 무슨 이유였는지 그녀는 밤새 끙끙 앓았다. 다른 가족이 아프면 약이며 밥이며 엄마가 챙겨줄 수 있지만, 엄마가 아프면 답이 없다. 아픈 환자를 간호할 사람도 없고 집안을 꼼꼼히 챙겨나갈 사람도 없다.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다. 그래서 밤새 앓던 엄마는 아침이 되어 어떻게든 일어나야만 했다.

이때 엄마는 문을 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간단히 일어나질 턱이 없다. 일어나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창밖에 모진 비바람에 누워 버린 꽃이 보였다. 그 꽃은 꼭 엄마 자신인 것처럼 보였다. 저 쓰러진 꽃도 일어나야 하고, 아파 누운 엄마도 일어나야만 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고도 분명하다. 아침밥 해서 아이들 먹이고 입혀서 학교 보내는 것. 이 엄마의 사명이 아픈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이때 엄마가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구절이 참 짠하다. 저 말은 여태껏 살 힘이 없었다는 것, 기운과 마음이 바닥을 쳤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끝에서 우리는 상상한다. 엄마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이들을 목청껏 깨우는 것을. 쌀을 씻고 밥을 하는 부산한 뒷모습을. 그리고 ‘살아야지’라는 엄마의 말을 따라서 말해본다. 실천해야 할 삶의 사명을 받았으니 살아야지. 저런 엄마의 밥을 먹었으니 살아야지.
 
나민애 문학평론가
#꽃#김사인#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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