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일반고 취업族… 국비로 직업교육 받으며 조기취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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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안가는 일반고 학생 ‘취업 뽀개기’

올해 서울 강서구 명덕여고를 졸업한 지하영 씨(19·여)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서울 종로구의 한 한식레스토랑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69.8%(2015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지 씨가 대학 진학을 과감히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요리사의 꿈을 일찍 준비하기 위해서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일반고 재학생 중 대학 진학 대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직업훈련을 지원한다. 훈련비용은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지 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3학년 때 고려직업전문학교 글로벌마스터셰프 과정을 1년간 병행했고, 졸업도 하기 전인 1월 이 레스토랑에 취업했다. 6개월 수습 기간이 끝나면 약 200만 원의 월급과 4대 보험은 물론이고, 각종 복지 혜택이 제공되는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레스토랑은 365일 휴일 없이 운영되지만 직원들끼리 교대로 쉬기 때문에 주 5일 근무가 가능하다. 요즘 청년들의 현실적 꿈이라는 질 좋은 일자리의 정규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 대학 포기하고 취업한 비결

지 씨의 부모는 처음에는 딸을 말렸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캠퍼스 생활을 즐기길 바랐다. 지 씨 역시 대학생이 되고픈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대학보다 꿈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그는 “요리사가 되는 데 대학 졸업장은 중요치 않다”며 “일찌감치 기술을 배워서 빨리 자리를 잡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한 부모도 지금은 그 누구보다 딸이 선택한 길을 응원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레스토랑을 직접 찾아 딸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식사를 함께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일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친구들이 전하는 캠퍼스 생활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 씨는 본인이 선택한 길이 자신의 꿈을 위한 지름길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그는 “요리사 같은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배우는 것보다 사회에서 배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며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대학에 집착하지 말고 1년이라도 더 빨리 배우는 게 나은 거 같다”고 말했다. 지 씨는 레스토랑 업무가 익숙해지는 대로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요리사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을 생각이다.

○ 급증하는 대학 비진학자

지 씨처럼 일반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이 바로 취업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반고 교육은 대학 진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고 비진학 졸업자들은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고, 그나마 얻은 일자리도 질이 낮은 곳이 많으며 임금도 대졸자의 72.4% 수준이다. 반면 특성화고 등 직업계고는 3년 내내 직업훈련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에 졸업 후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하지만 일반고를 졸업한 29세 이하 청년 가운데 대학 비진학자는 2013년 41만6000명에서 지난해 52만8000명으로 26.9% 급증했다. 특성화고 전학이 여의치 않아 별다른 직업훈련도 받지 못한 채 사회에 나오는 청년이 상당수다. 특히 이들은 정부의 청년 고용 대책에서 소외돼왔다. 그동안 정부 정책이 구조조정을 통해 대학 진학률을 낮추는 한편 직업계고의 직업훈련을 강화해 ‘실질 취업률’을 높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 일반고도 직업훈련으로 ‘취업 뽀개기’

이에 정부는 비진학을 선택한 일반고 학생들에 대한 위탁직업교육(일반고 특화과정)을 지난해 6000명에서 올해는 1만4000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산업정보학교(공립)를 설립하고, 우수한 훈련시설과 강사진을 갖춘 전문대 위탁직업교육을 지난해 400명에서 올해는 1700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지 씨처럼 일반고를 다니면서 직업훈련을 받고, 졸업 후 바로 좋은 일자리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산업정보학교 재학생이 취업성공패키지(정부의 청년 취업 지원 서비스)에 참여하면 월 20만 원의 훈련수당도 지급하기로 했다. 일반고 2학년 2학기부터 1단계 상담을 통해 진로를 설정하고, 2단계 직업훈련(산업정보학교 등)과 3단계 취업 알선을 통해 질 좋은 일자리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델이다.

일반고 학생들이 받는 직업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된다. 취업률 등 우수한 실적을 보이는 훈련기관은 훈련과정 공모 시 가점을 주고, 3년간 자율권 보장 등의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했다. 특히 훈련기관의 취업률과 고용유지율 등의 성과를 공개해 훈련기관들끼리 경쟁하도록 유도하고, 학생들도 우수한 훈련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일반고 교사에게도 고용서비스 교육을 실시하고, 훈련기관이 학생들을 상대로 직업훈련 방식과 내용, 향후 진로 등을 직접 홍보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도입된다.

문기섭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은 “그동안 일부는 일반고 재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원치 않는데도 일반고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기회 자체가 적었다”며 “이들에게 충분한 훈련과 서비스를 제공해 노동시장 적응을 돕고, 평생 일자리로 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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