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청소 도우미 어쩌나” 새학기 워킹맘은 괴로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아래 항목을 체크해 20일까지 담임선생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들고 온 가정통신문을 읽던 손모 씨(36·여)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학교에서 요청한 학부모 활동 내용 탓이다. 도서실 도우미, 급식 도우미, 화단·텃밭 관리 도우미, 학급 청소 도우미, 체험활동 도우미, 김장 행사 도우미, 벼농사 체험 도우미, 안전 등·하굣길 도우미 등 종류도 다양했다. 맞벌이인 손 씨로서는 어느 하나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22일 손 씨의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총회가 열렸다. 손 씨는 눈치를 보며 회사에 연차를 내고 학교를 찾았다. 손 씨는 교실 뒤쪽에 앉았다. 앞쪽에는 학부모 활동에 평균 3개 이상 참여하는 엄마들이 앉았다. 이른바 ‘A학점’으로 불리는 학부모들이다. 손 씨처럼 뒤쪽에 앉은 엄마들은 학부모 활동 1개를 겨우 체크한 엄마들이다. 자연스럽게 D학점으로 불린다.

역시 맞벌이인 안모 씨(37·여)도 날마다 아이가 가져오는 가정통신문을 보는 게 두렵다. 안 씨는 “담임선생님이 전화해서 (어머니회) 활동을 부탁했는데 거절했다”며 “가정통신문이 올 때마다 일종의 권고사직서처럼 느껴질 정도로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워킹맘들에게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은 1년 중 육아 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때다. 각양각색의 학부모 활동 요청에 결국 퇴사를 결심하는 워킹맘도 많다.

이맘때 초등학교에선 ‘녹색어머니회’ ‘명예교사회’ ‘학교폭력방지회’ ‘급식 도우미회’ 등 다양한 이름의 학부모회 가입을 권유한다. 워킹맘의 비율이 느는 현실과 달리 활동의 종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방과 후 운동 도우미, 교육활동 모니터링, 독서 도우미, 학예회 도우미 등을 운영 중이다. 최근 한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는 “학교 일 때문에 연차를 더 내는 것도 눈치 보인다. 퇴사를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글이 하루 평균 5건씩 올라오고 있다.

본보가 최근 일주일 동안 서울 성동구와 영등포구 일원에서 만난 워킹맘 20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3월까지만 일할 생각이다”라거나 “이제는 아이의 학교와 회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업 엄마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워킹맘들이 등·하굣길 도우미 등 아침, 점심 특정 시간대의 활동에 몰리다 보니 학급 청소, 급식 도우미 등 반나절 이상 노동력이 드는 활동은 자연스레 전업 엄마들의 몫이다. 전업 엄마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면서 맞벌이 엄마들의 참여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바꾸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이모 씨(43·여)는 “워킹맘들이 모인 카톡방에서는 3, 4월만 버티자는 말이 유행어일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문화의 변화를 촉구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부모를 학교 행사에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을(乙)’로 보는 의식이 여전하다”며 “전문성을 가진 워킹맘이 많은 현실을 반영해 학부모회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단비 kubee08@donga.com·구특교 기자
#워킹맘#새학기#학부모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