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구, 미적분 가르쳐줄 선배님” 돈 주고 학점과외 받는 대학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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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大과외’ 바람부는 대학가

‘이번 학기 동안 공강 시간 활용해 물리학 과외해주실 선배님 찾습니다. 주 1회 기준 10만 원 드릴게요.’

‘외국 항공사 취업 노하우 과외해주실 선배님 계신가요. 10만 원 드립니다.’

2017학년도 신학기 개강을 맞은 대학가에 이 같은 ‘대대(大大)과외’ 바람이 불고 있다. 고학점 스펙을 쌓고 미리 면접 등 취업 준비에 대비하기 위해 선배 대학생에게 값을 치르고 과외를 받는 후배 대학생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취업난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절박해진 대학생의 처지가 반영됐다는 해석과 함께 대학에 와서까지 사교육을 찾는 ‘사교육 세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서울 시내 유명 A대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자신에게 과외해줄 선배를 찾는다는 글이 다수 게시됐다. 한 대학생은 “문과 출신으로 공대에 왔는데 이번 학기 동안 미적분학을 가르쳐줄 선배를 찾는다”며 “과외비로는 1주일에 2번 2시간씩 20만 원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운동역학을 배우고 있는데 벡터랑 물리가 어렵다”며 “중간고사 전까지 과외해줄 벗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명문대로 꼽히는 B대 게시판에도 과외 선배를 찾는 광고가 속속 올라왔다. 통계학을 가르쳐줄 동문을 찾는다는 한 학생은 2시간씩 8회 수업에 50만 원을 제시했다. 또 다른 학생은 “열역학을 가르쳐줄 분을 찾는다”며 “시간 낭비 없이 제대로 설명하는 분이라면 시간당 10만 원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적었다.

이를 두고 각박해진 대학가 풍토를 드러낸 현상이라는 해석도 많다. 대학가의 멋이 살아있던 과거에는 선후배 간 학업 도움이나 취업 조언이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이뤄졌지만 선후배 모두가 심적, 물리적 여유도 없는 최근에는 관계 맺기 자체가 안 되고 있다는 의미다.

공대생 이모 씨는 “1980년대 대학생들이야 놀고먹어도 취업이 됐다지만 지금은 취업을 하려면 1학년 때부터 학점 관리는 기본”이라며 “온갖 스펙 준비에 시간이 없고 학생 간 경쟁이 심해 부탁하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서울대 상경계 및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점관리 특별반이 생긴 것도 이 같은 세태를 반영한다.

일각에선 대학가의 ‘대대과외’ 현상이 사교육 세대의 병폐와 최근 대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를 보여준다고 본다. 한 대학교수는 “최근 학생들은 정규 교육이나 자기 혼자만의 공부 외에 사교육에 늘 의존했던 관성이 있다”며 “최근 중고등학교의 교육 난도가 낮아지다 보니 대학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일부 대학은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의 학업 애로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양대 공대는 공대생이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공학수학’ 과목을 운영하면서 A학점 이상 받은 선배들이 다음 학기 수강생들의 멘토가 돼 후배들을 가르치게 하고 있다. 후배들은 원할 경우 3, 4명 그룹과외 형태로 이전 학기 우수 선배로부터 모르는 부분을 배울 수 있다. 선배에게는 봉사시간이 인정된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대학생이 되면 심신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과거에 비해 지금 대학생은 입학과 동시에 취업난이라는 또 다른 난관과 마주한다”며 “대학에 왔어도 취업을 못 하면 언제든 절대빈곤 상태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대학가를 무한경쟁 구도로 몰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대대과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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