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 ‘자체 고로 63년 꿈’ 결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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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제철소 세워 철강용 반제품 처음 들여와… 당진 후판공장서 입고식

“고로를 짓겠다는 꿈은 선대부터 시작됐습니다. 베네수엘라, 캐나다, 미국 등 여러 곳을 검토한 끝에 브라질에서 그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무대 위에 선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이 환하게 웃으며 벅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2일 동국제강이 브라질 CSP 제철소에서 후판용 철강 반제품인 슬래브를 들여오며 입고식을 연 충남 당진시 후판공장. 이날 입고식은 고로를 가진 철강사가 되겠다는 동국제강의 오랜 꿈이 마침내 실현됐음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철강 제품의 출발점이 되는 쇳물은 철광석을 녹이는 고로나 고철(스크랩)을 녹이는 전기로에서 만들 수 있다. 철강 업계에서는 최근 전기로 기술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서도 품질 높은 철강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순도 높은 쇳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고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1954년 창립된 동국제강은 그동안 전기로만 운영하면서 국내에 고로를 만들지 못했다. 고로 건설은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 사업이다.

이런 가운데 2005년 장 부회장의 형인 장세주 회장이 브라질 동북부 세아라 주와 투자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동국제강은 자체 고로 설립의 첫 발을 뗐다. 페셍 산업단지에 연간 300만 t의 슬래브를 생산할 수 있는 CSP 제철소를 만드는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브라질 소재 세계 최대 철광석 회사인 발리가 50%, 동국제강이 30%, 포스코가 20%의 비율로 55억 달러를 투자한 CSP 제철소는 2012년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6월 10일 마침내 고로에 불을 붙이고 운영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화입 후 상업생산까지 6개월이 걸리지만 CSP 제철소는 그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해 올 2월까지 140만 t의 슬래브를 생산했다. 또 가동 시작 1년도 안 돼 자동차 강판용 슬래브, 유정강관용 슬래브 등 고부가가치 고급 철강을 잇달아 생산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동국제강은 이번에 입고된 5만8751t의 슬래브를 시작으로 올해 모두 25만∼30만 t의 슬래브를 들여올 예정이다. 내년에는 최대 60만 t으로 입고 물량을 확대한다.

동국제강은 브라질에서 대서양과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1만9783km를 49일 동안 건너온 슬래브를 이날 오후 2시부터 후판 제작 공정에 투입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슬래브를 사서 쓸 때는 물량이나 고급제품 확보 등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CSP 제철소를 통해 더 많은 물량을 기존 제품보다 더 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동국제강은 CSP 제철소에서 매년 생산되는 300만 t의 슬래브 가운데 160만 t의 물량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100만 t은 세계 시장에 판매하고 60만 t은 당진공장에서 직접 사용할 계획이다.

동국제강이 이 슬래브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는지는 이날 입고식 행사 곳곳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입고식 행사 무대에는 각각 무게가 20t에 이르는 슬래브 10개를 5개씩 양쪽에 쌓고 옆면에 브라질과 한국의 이미지를 그려 놓았다. 후판공장 벽면에 브라질 제철소 현장과 엔지니어 등의 모습을 큼지막하게 그려 ‘아트월’로 만들기도 했다. 동국제강은 이날 행사에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의 고객사와 금융기관 관계자를 초청했다. 그러면서 참가자들이 쓰는 방명록 자리에 종이 대신 4.5mm 두께의 후판을 놓아뒀다. 지난달 6일 시범적으로 들여온 SPC 제철소 슬래브로 만든 후판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장 부회장은 “한국 회사가 외국에서 고로를 짓고 슬래브를 만들어 50일간의 항해를 거쳐 국내로 들여와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동국제강을 무리 중에서 용감하게 바다에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편 장 부회장은 이날 횡령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장세주 회장이나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 여부 등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장 부회장은 “장 회장이 (내년에) 복귀하면 열심히 할 것이고 나는 부회장으로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부회장은 매주 장 회장을 면회해 자문을 구하고 있으며 이날 장 회장이 입고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섭섭해한다고 덧붙였다. 전경련 탈퇴와 관련해 장 부회장은 “회비 납부만 보류한 채 관망 중”이라고 밝혔다.

당진=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동국제강#제철소#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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