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의 ‘영화 속 그 곳’] 영화 ‘재심’에서 강하늘이 살던 파란 지붕 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2일 11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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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은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다방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10대 소년이 택시운전사 살인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10대 소년의 역할을 맡은 강하늘은 엄마(김해숙)와 함께 바닷가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다. 엄마는 아들 옥바라지를 하며 당뇨를 앓다가 시력까지 잃어버린 상태.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생계를 위해 갯벌에서 바지락을 캔다. 아들은 엄마가 안쓰러워 집에서 갯벌까지 붙잡고 갈 수 있는 밧줄을 설치해준다.

변호사 역할을 맡은 정우는 억울한 피의자의 누명을 벗겨줌으로써 TV방송을 통해 유명해지고, 출세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는 강하늘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바닷가 파란 지붕 집을 찾는다. 두 사람은 허름한 창고 벽에 약촌오거리 지도를 그리고, 메모지를 붙여가며 사건을 재구성한다. (모바일 뉴스가 대세인 21세기에도 할리우드 영화도, 국내 영화도 수사 장면에는 신문지 오려붙이는 장면이 꼭 나온다.)

강하늘의 집의 실제 촬영지는 전북 익산이 아니라 충남 보령시 천북면 바닷가에 있다. 서해안 쭈꾸미 낚시배가 출항하는 항구로 유명한 오천항 인근의 한적한 해안이다. 해변의 한 구석, 군부대 밑에 홀로 떨어져 있는 파란 지붕 집이 영화를 촬영하기 딱인 곳이다. 드넓은 갯벌, 불타는 듯 떨어지는 서해안의 낙조가 영화의 비극과 희극의 주요한 배경이 된다.

‘강하늘의 집’은 이 영화를 촬영하는 스태프들이 묵었던 펜션에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 넓은 바닷가에 붉은 석양이 질 때, 한적한 해변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파란 지붕 집은 뭔가 모를 사연과 끝없는 스토리를 담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스태프들이 묵었던 한옥 펜션 ‘오학정’은 해송이 무성한 언덕 위에 지어진 2층 한옥이다. 충남 보령 지역에서도 가장 큰 한옥으로 손꼽히는 집이다. 주인장인 정영희 씨(72)가 10년 넘게 짓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그는 소나무를 직접 구해 바닷가에서 말리고, 둥그렇게 대패질로 깎고, 2중으로 서까래를 올려 평생의 노력이 담긴 한옥을 지어냈다.

원래 자신이 살려고 지은 집인데 늙은 부부만 살기 뭐해서 2층을 펜션으로 내놓았다. 방 안에는 주인장의 세심한 손길이 예술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중국 영화에 나올 법한 아치형 나무 침대하며, 거대한 나무뿌리를 직접 캐서 사포로 곱게 밀어 만든 식탁의 다리, 대나무로 만든 옷걸이, 손수 만든 틀에 창호지를 바른 전등 갓까지 집 안 곳곳에 주인장의 손길이 안 거친 곳이 없다. 특히 황토 벽에 기대에 앉을 손님들이 등에 뭐가 묻을까 편히 쉬지 못할 것을 염려해, 사람이 앉은 등이 닿는 곳에는 소나무를 벽에 붙여놓은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또한 1층에는 지붕을 대나무로 꾸며 마이크를 써도 천연방음벽이 되도록 했다. 노부부는 김장철에는 서해의 바닷물에 절인 배추를 담그기도 한다. 깔끔하고 시원한 절인 배추의 맛은 입소문이 자자하다.

오학정에서 가장 좋은 추억은 한적한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고, 갯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는 것이다. 석양에 해질 무렵에 낚시를 하고, 조개를 잡다보면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듯하다.

한옥펜션 오학정(충남 보령시 천북면 오얘미길 91-28, 017-431-0203)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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