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호랑이 돌아오게 두만강 생태통로 만들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호랑이 지킴이’ 나선 조선족 과학자 부부

훈춘 지역에서 백두산 호랑이 관련 현장 조사를 하고 있는 조선족 부부 과학자 리영 씨(왼쪽)와 리해룡 씨. 이항 교수 제공(유상호 씨 촬영)
훈춘 지역에서 백두산 호랑이 관련 현장 조사를 하고 있는 조선족 부부 과학자 리영 씨(왼쪽)와 리해룡 씨. 이항 교수 제공(유상호 씨 촬영)
“두만강을 따라 ‘백두산 호랑이’가 한반도로 돌아올 것입니다. 호랑이가 먹고 쉬며 백두산까지 내려올 ‘생태통로’를 만들면 가능합니다.”

1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만난 리해룡 씨(34·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박사과정)는 호랑이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조선족 과학자다. 7년 전 중국 지린(吉林) 성 훈춘(琿春)동북범국가급자연보호구관리국에서 근무할 당시 참여한 현장 조사에서 지금의 아내 리영 씨(32)를 만났기 때문이다. 부부는 현재 서울대에서 나란히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들은 국내 호랑이 전문가인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61)와 함께 백두산 호랑이의 서식 환경을 조사하고 있다. 한때는 산신령으로 불리며 한반도의 숲을 지배했던 백두산 호랑이는 1924년을 끝으로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관리국에 따르면 러시아와 접한 훈춘 지역에 사는 27마리가 한반도에 가장 가까이 사는 호랑이다. 부부의 목표는 훈춘의 호랑이가 옛 삶의 터전 백두산으로 돌아가게 돕는 것이다.

리해룡 씨는 “2010년 세계자연기금(WW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백두산은 훈춘 다음으로 호랑이가 살기 적합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는 고속도로와 철도 등이 건설되며 호랑이가 백두산까지 이동할 길이 끊어져 버렸다. 이들은 호랑이가 한반도로 돌아오는 길, 즉 생태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는 지난해 10월 리영 씨가 야생동물 보호 기관들이 지원하는 ‘보전리더십프로그램(CLP)’의 ‘미래보호활동가상(FCA·Future Conservative Award)’을 수상하며 시작됐다. FCA는 야생동물 보전 분야 신진 연구자들이 연구를 시작할 기반을 마련하도록 연간 1만2500달러(약 1396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연구진이 제안한 최적의 경로는 두만강을 따라 약 200km 떨어진 백두산에 도달하는 것이다. 생태 통로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멈춰서 쉬어 갈 수도 있는 서식 환경, 사슴 같은 먹이동물이 필수다. 호랑이의 행동반경을 고려했을 때 필요한 생태 통로의 너비는 약 8km. 연구진은 일종의 ‘그린벨트 길’을 구상하고 있다.

리해룡 씨는 “생태 통로가 구축되면 호랑이가 살 수 있는 면적이 약 20만 km²로 4배가량 커져 중국 전체에 80마리, 백두산 지역에만 40마리의 호랑이가 살게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중국 야생동물보호협회(WCS)와 함께 생태 통로의 시작점인 훈춘 경신진(敬信鎭) 지역에 무인카메라 14대를 설치해 이 일대가 서식에 적합한 환경인지 조사해 왔다. 카메라에 호랑이의 모습을 담지는 못했지만, 길이 16cm의 성체 호랑이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 교수는 “한반도로 돌아온 백두산 호랑이는 ‘한국 호랑이’가 실제로 우리 땅에 산다는 자긍심을 되살리는 동시에 백두산 지역 난개발을 막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FCA 지원이 끝난 뒤에도 연구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 국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스토리펀딩’에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현재 목표액 1000만 원 중 227명의 참여로 115만 원이 모였다. 내달 25일까지 모인 후원금은 서식 환경을 관찰할 카메라 구입에 쓸 계획이다.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한국호랑이 지킴이#두만강 생태#백두산 호랑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