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 창간 9주년] 2008베이징올림픽 수장 김경문의 회상 “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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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3월 22일 05시 30분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을 맡을 당시 김경문 감독. 스포츠동아DB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을 맡을 당시 김경문 감독. 스포츠동아DB
2008베이징올림픽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사령탑이었던 김경문(59) 현 NC 감독이다. 김 감독은 베이징에서 ‘믿음의 야구’와 ‘변칙작전’을 고루 섞는 변화무쌍한 전략으로 한국야구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영광을 안겼다. 환희의 순간을 회상해달라는 부탁에 김 감독은 “벌써 9년이 흘렀다. 세월 참 빠르다”며 먼 산을 잠시 바라봤다.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승 감독’ 김경문이 기억하는 베이징은 어떤 모습일까.

추억에 잠긴 김 감독은 가장 먼저 선임 과정을 되새겼다. 지역예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여러 사령탑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개인 혹은 팀 사정을 이유로 감독직을 고사했다. 결국 2007년 3월 당시 4년차에 불과한 김 감독에게까지 제의가 왔고 지휘봉이 주어졌다. 김 감독은 “수락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시즌 중에 올림픽이 열렸기에 결정이 쉽지 않았다”면서 “그래도 구단(두산)에서 배려를 해준 덕분에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선을 앞두고 김 감독이 내건 조건은 하나. 전권을 달라는 과감한 부탁이었다. 김 감독은 “KBO측에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메달 색깔도 중요했지만, 대표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하일성 당시 사무총장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무탈하게 대표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물론 베이징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 최대 논란은 ‘국민타자’ 이승엽(41·삼성)의 계속된 부진. 김 감독은 “(이)승엽이 방망이가 하도 맞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상황에서 해결해주리라 확신했기에 끝까지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경문표’ 믿음의 야구는 결국 이승엽이 4강전과 결승전에서 연이어 터뜨린 결승홈런으로 아름다운 결말을 맺었다.

그러나 금메달의 감격도 잠시. 우승 사령탑은 한국에 돌아와 다시 기나긴 시즌에 임해야했다. 김 감독은 “베이징에서 돌아오자마자 인천 원정(8월26일)에 나섰다”면서 “우승을 못하고 왔으면 참 피곤했을 텐데 그 반대라 다행이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당시의 감격은 이제 유니폼 한 벌로 남아있다. 김 감독은 “금메달을 기념하기 위해 집에 유니폼 한 벌은 소중히 남겨놓았다”며 추억을 웃음으로 대신했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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