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수영은 일대 역사를 만들었다. 박태환(28)이 남자 자유형 400m에서 3분41초86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내친 김에 그는 자유형 200m에서도 1분44초85로 은메달을 추가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러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박태환에게는 빛과 그림자가 겹쳐졌다. 베이징올림픽 이듬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전 종목 예선탈락으로 부진했던 그는 2010년 또 한 번 화려하게 비상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자유형 3관왕(100·200·400m)에 등극했다. 4년 전 도하아시안게임에 이은 2회 연속 3관왕이었다. 2012런던올림픽에서도 2개의 값진 은메달(200·400m)을 수확했다.
그러나 곧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따냈지만 ‘금지약물’에 발목을 잡혔다. 인천아시안게임 직전 받은 도핑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인 네비도를 투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얻은 모든 메달을 잃었을 뿐 아니라,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2014년 9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선수자격 박탈 징계를 받았다.
선수자격을 회복한 뒤에도 고통은 계속됐다. 제대로 훈련을 못한 채 나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압도적 성적을 냈음에도 ‘금지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는 징계 만료일로부터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규정에 따라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길이 막혔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외로운 싸움이 또 다시 이어졌다. 박태환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소송을 통해 스스로 활로를 뚫었다. 그러나 어렵게 출전한 리우올림픽에서 그는 주 종목인 400m와 200m는 물론 100m에서도 예선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온갖 비난이 뒤따랐지만, 박태환은 리우올림픽 직후 주변의 ‘은퇴’ 예상을 뒤엎고 재기를 선언했다. 2020도쿄올림픽에 대해선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선을 긋고는 다시금 도전을 택했다. 당장 올 7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와 내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을 겨냥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은 그 다음 얘기다.
그러나 아직도 박태환을 둘러싼 주변여건은 녹록치 않다. 대한체육회로부터 관리단체로 지정받은 대한수영연맹의 행정표류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비롯한 올해 국내대회 일정이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과연 박태환의 2017년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