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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食, 고단한 현재와 과거의 추억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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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食, 고단한 현재와 과거의 추억을 잇다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3-18 03:00수정 2017-03-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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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헨미 요 지음·박성민 옮김/364쪽·1만6000원·메멘토
방글라데시 다카 시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든 브리야니(볶음밥)를 받아든 저자. 메멘토 제공
이처럼 그로테스크한 동시에 슬픈 미식(美食)기를 읽어보지 못했다. 여기서 미식은 입에 달고 혀에 감미로운 음식을 가리키지 않는다. 방글라데시의 쓰레기 음식부터 체르노빌 원전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식사 그리고 인육까지 온갖 상상을 초월한다. 자, 이게 미식이라고? 그런데 묘한 음식들 뒤에 깔린 이야기가 곁들여지면 이것은 힐링이자 미식이 된다. 눈빛으로도 통하는 죽마고우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삼겹살에 소주면 충분하지 않은가.

일본 교도통신 기자 출신으로 일본 최고 권위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은 저자는 어느 날 세계여행을 훌쩍 떠난다. 수많은 특종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거시담론에 빠져 사람들의 소소한 삶을 무시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복잡다단한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주제 ‘식(食)’을 주제로 잡았다.

그가 본 먹기는 현재의 고단함과 과거의 아픈 추억을 잇는 접점이다. 방글라데시 다카 시장에서 맛본 브리야니(볶음밥)에는 누군가 씹다 버린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음식물쓰레기를 재활용한 시장이 따로 있어 상한 정도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구조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방문한 퍼(쌀국수) 식당에선 자본주의의 퍽퍽함이 느껴진다. 퍼 한 그릇을 후루룩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관찰의 결과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는 참혹한 식의 역사를 발견한다. 1946, 1947년 섬 주민 38명이 굶주린 일본군 패잔병들에 의해 잡아먹힌 것. 세월이 많이 흘러서였을까. 필리핀 토벌군 시절 일본군이 남긴 고기를 산짐승으로 잘못 알고 먹은 주민은 “이제 일본 병사 개개인에게 원한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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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철저히 인격이 짓밟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세 명의 아픈 기억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자살까지 시도한 이들이 일본인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건 음식에 대한 추억의 힘이었다. 일본군 병사가 몰래 갖다 준 통조림 하나로 10명의 피해 여성들이 맛있게 나눠 먹은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먹는 인간에게서 짧고도 형이하학적이며 까닭 없이 애잔한 인간의 주제를 발견했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먹는 인간#헨미 요#미식#필리핀 민다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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