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센터 노크했더니 빚수렁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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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불법대부업 피해상담센터 호평
개설 8개월 동안 267명 찾아… 불법추심 시달린 상담자 대부분
법정이자율로는 채무변제 상태
채무관계 사실 확인후 대처 조언… 센터서 직접 대부업자와 접촉도

6일 박원순 서울시장 앞으로 편지 한 통이 왔다. 보낸 이는 서울에서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50대 초반의 김모 씨. 그는 박 시장에게 “서울시가 한 가정을 살렸다”고 적었다.

2007년 사업을 시작한 김 씨는 2013년 매출 급감으로 운영자금이 부족해지자 대부업체에서 월 10% 이자로 7000만 원을 빌렸다. 은행권, 개인 빚까지 모두 끌어 썼지만 직원 월급과 거래처 대금을 막기에도 빠듯했다. 고난은 그때부터였다. 월 700만 원의 이자를 쪼개서 내야 하는 날은 2∼3일에 한 번씩 찾아왔다. 한 번이라도 제때 갚지 못하면 이름도 모르는 남성들로부터 폭언이 쏟아졌다. 지난해 8월에는 패거리가 집까지 찾아와 “자식들을 못 볼 수 있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개미지옥 같은 사채의 수렁에서 헤어 나온 건 서울시 불법대부업 피해 상담센터를 찾으면서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그는 ‘내가 왜 이 지경에 빠지게 됐는지 알고는 가야(죽어야)겠다’는 마음에 센터 문을 두드렸다. 상담을 받고서야 갚은 돈이 원금의 갑절을 넘어섰고 법정이자율을 훨씬 초과하는 이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 씨는 “추심에 시달리다 보면 얼마나 갚았는지 판단할 여유조차 잃게 된다”며 “센터에서 들은 대로 대부업자에게 경고하니 놀랍게도 더 이상 폭력적인 추심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업을 재개한 그는 ‘합법적인’ 빚을 갚아 나가고 있다.

서울시 불법대부업 피해 상담센터는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전문조사관과 금융감독원 직원, 민생호민관 같은 전문가 10명이 상주한다. 16일 센터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약 8개월 동안 267명이 상담을 받았다. 매일 1명 이상의 피해자가 센터 문을 열고 들어온 셈이다.

센터에서는 피해 사례를 접수하면 채무관계 사실을 확인한 후 피해자에게 법정이자율에 따른 남은 채무액과 초과지급금 등을 알려준다. 센터장인 천명철 서울시 민생경제과장은 “이곳을 찾는 피해자 대부분은 법정이자율로 따지면 이미 채무가 다 변제된 줄도 모르고 있다”며 “설명을 듣고 나서야 갚지 않아도 될 돈 때문에 고생한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민원을 접수시킨 피해자는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30∼40대(30∼49세)가 전체의 60%에 육박했다.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인 20대(20∼29세)는 17.1%, 60세 이상 장년층도 7%를 차지했다. 남성은 56%, 여성은 44%였다.

한 30대 주부는 “아무도 몰래 급전을 쓴 대부업체에서 남편에게 알린다고 협박을 한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며 센터를 찾아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인터넷 포털에서 광고를 보고 미등록 대부업체 5곳에서 선이자 25만 원을 포함한 300만 원을 빌렸다. 원리금은 순식간에 1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이자율로 따지면 연 1800%에 달했다.

민원을 접수시켜 상담을 받은 피해자가 채무 청산에 실패하면 센터 직원들이 직접 대부업자와 접촉한다. 이 주부도 센터 직원들이 대부업체 5곳에 직접 전화해 채무를 청산했다. 센터 관계자는 “관(官)에서 불법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부업자 십중팔구는 채무 청산에 응한다. 피해자는 센터를 적극 찾으면 좋겠다”며 “대포폰 등을 사용하는 신원 미상의 채권자가 ‘배 째라’ 식으로 나온다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서울시#박원순#불법대부업#피해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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