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양과 질의 시대 넘어 ‘格의 시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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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 인격, 품격….

우리는 자주 ‘격(格)’에 대해 논하지만 막상 이를 갖추는 건 쉽지 않다. 도대체 격이란 무엇이며 왜 갖추기 어려운 것일까? 사람이나 행위, 태도, 건물 등 격의 대상이 무엇이든 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숙성 시간이다. 즉 격이란 서두르거나 들볶는다고 해서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는 태도다. 스시 장인을 예로 들면, 진정한 장인은 돈을 벌기 위해 스시를 만들지 않는다. 카운터에 앉은 고객에게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만 정성을 다한다. 격의 판단 기준 중 마지막은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극히 절제된 행위’다. 모자란 듯, 부족한 듯, 과분하지 않은 격은 있어도 넘치는 격은 없다.

그렇다면 ‘격을 갖추는 것’은 왜 중요한 일일까? 이제 제품만 잘 만들면 팔리던 ‘양의 시대’, 기술이 담긴 상품을 만들어야 팔리던 ‘질의 시대’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 명품만 선택받는 ‘격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즉, 격은 21세기 창조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 우위 원천으로 강조되는 문화자본 중 하나다.

문화자본은 단기간에 획득할 수 없고, 오랜 기간 일상생활에서 경험들이 축적돼 형성되기에 모방이 불가능하다. 격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와 전략이 차별적 경쟁 우위를 확보해주는 궁극적인 원천이 되는 이유다.

병원의 사례로 ‘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보자. 의료진은 좀처럼 천장 한 번 쳐다볼 일이 없지만, 환자는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착안해 자연 채광과 아름다운 천장 디자인을 고집하는 병원, 기계적으로 ‘저염식’을 만들어내는 대신 입맛 없는 환자를 위해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병원은 어떨까. 또 수술실의 불안감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기도하는 의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병원, 그리고 천국에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을 병원 꼭대기 층에 마련한 병원이라면 우리는 ‘격을 갖췄다’라고 말할 수 있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kimjin@yuhs.ac
#dbr#경영#격의 시대#문화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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