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랩’에서 창업→‘불펜’서 스타트업 성장… 중견회사 납품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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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아이디어 발굴하는 서강대

1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베르크만스 우정원 7층에 있는 창업 공간 ‘사다리랩’에서 스타트업 에프랩 멤버가 영화매거진 프리즘오브를 보여주고 있다. 왼쪽부터 유세연 디자이너(25), 정예진 디자이너(25), 조현경 마케터(24), 유진선 대표(25), 백주홍 디자이너(22), 안현경 편집장(24), 송경은 디자이너(25).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베르크만스 우정원 7층에 있는 창업 공간 ‘사다리랩’에서 스타트업 에프랩 멤버가 영화매거진 프리즘오브를 보여주고 있다. 왼쪽부터 유세연 디자이너(25), 정예진 디자이너(25), 조현경 마케터(24), 유진선 대표(25), 백주홍 디자이너(22), 안현경 편집장(24), 송경은 디자이너(25).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처음엔 그냥 ‘영화’가 좋았다. 상영관에서 작품만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감독과 직접 대화하고 같은 영화를 본 관객과 생각을 주고받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 빠져 있던 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유진선 대표(25·여)는 대학 친구들과 함께 2014년 ‘필밍아웃(현 ‘에프랩’·ef Lab)’이라는 창업 팀을 만들었다. 독립영화 상영회 및 감독과의 토크쇼를 열었다. 상영회 현장에서 나온 좋은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영화잡지’도 기획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은 창업 아이템이 됐다.

유 대표의 에프랩은 2015년 8월 서강대가 주최한 창업 동아리 경진대회에서 1위에 선정됐다. 대학 측은 800만 원을 지원했다. 학교가 학생의 아이디어를 높이 산 결과다. 창업 아이템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학교의 지원금으로 독립단편영화 상영 사업과 더불어 영화잡지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4개월 만에 영화잡지 ‘프리즘오브(PRISMOf)’ 1호를 발간했다.

프리즘오브는 한 권에 하나의 영화만을 주제로 관련 칼럼, 미술작품, 인터뷰, 앙케트 조사 등을 통해 영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소개하는 영화 매거진이다. 아직까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다. 에프랩 팀이 서강대가 주최한 글로벌 창업 역량 강화 프로그램 ‘싱가포르 스타트업 글로벌 캠프’에 참가한 게 계기가 됐다. 캠프는 예비 창업가가 직접 기업 생태계를 체험하고 시장조사를 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유 대표는 싱가포르에 프리즘오브 샘플을 들고 무작정 서점들을 찾아다니며 영업에 나섰다. 이때 인연으로 프리즘오브는 2016년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에 공식 초대작으로 초청받았다. 해외 서점들은 독창적인 디자인의 프리즘오브에 관심을 가졌고 입점을 권유했다. 현재 프리즘오브 영문판은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 내 아트숍, 아트북 페어 주최 서점인 북액추얼리, 온라인 서점 맥파이 등 싱가포르 서점 3곳과 영국 런던, 인도네시아 서점 등에 입점한 상태다. 한국의 독립서점 10여 곳에도 입점해 여태까지 1∼3호 1000부씩 총 3000부를 판매했다.

에프랩은 진짜 스타트업으로 발돋움 중이다. 올해 초 서강대 오픈이노베이션센터의 사다리랩에 작업실을 꾸렸다. 사다리랩이란 서강대가 만든 661m²(약 200평) 규모의 창업 지원 시설로 학교 측이 학생의 사업 아이디어와 타당성을 검토한 뒤 입주 여부를 결정한다. 3개월 동안 무상 입주가 가능하며 연장 심사를 거쳐 최대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다. 에프랩은 지난해 프리즘오브 2, 3호를 발간하고 올 4월 발간되는 4호부터 격월 정기 발간할 예정이다. 유 대표는 “대기업 등 미래를 보장해주는 회사에 취직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며 “창업을 선택한 가장 큰 목적은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다리랩과 같은 건물에 있는 창업 공간 ‘불펜’에서 스타트업 택시 바우처 멤버가 새로 개발한 인터내셔널 택시의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현 기획 및 콘텐츠 크리에이터(24), 이원석 대표(29), 이준위 데이터 마이너(27), 김태희 퍼블리셔(33).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사다리랩과 같은 건물에 있는 창업 공간 ‘불펜’에서 스타트업 택시 바우처 멤버가 새로 개발한 인터내셔널 택시의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현 기획 및 콘텐츠 크리에이터(24), 이원석 대표(29), 이준위 데이터 마이너(27), 김태희 퍼블리셔(33).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경영학과 4학년 이원석 대표(29)는 학교의 창업 동아리 경진대회 1위 수상을 계기로 2014년 ‘택시 바우처’라는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택시 바우처는 외국인이 겪는 택시 ‘바가지요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불 택시 시스템이다. 외국인 등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 도심으로 오려는 승객은 택시 바우처가 제작한 웹 페이지에서 구간별 요금을 확인한 후 택시를 예약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공항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택시기사가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비싼 요금을 매기는 현장을 목격했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회에 출전했다.

이 대표는 학교 측이 대회 1위 팀에 지원하는 800만 원을 자본금으로 선불 택시 자동화 기계(키오스크)와 소프트웨어를 제작했다. 하지만 실제 공항에 키오스크를 설치하기 어렵고 이미 서울시가 ‘인터내셔널 택시’라는 사업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수백만 원을 들여 제작한 키오스크는 ‘고철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틈새’를 공략해 사업을 이어나갔다. 인터내셔널 택시를 위탁 운영하는 업체가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 등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을 파악한 뒤 해당 업체를 직접 찾아가 업무협약을 맺은 것이다. 이때부터 택시 바우처는 인터내셔널 택시 사업에 필요한 택시 입·배차 시스템, 기사용 애플리케이션 등 각종 시스템을 개발해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이 대표를 비롯한 택시 바우처 운영진이 위기가 닥쳐도 창업을 포기하지 않은 데에는 학교 측의 인적, 물적 지원이 있었다. 이 대표가 택시 시스템 개발 중 외주업체에 사기를 당했을 때, 추가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대학은 시제품 제작비 지원금 등을 통해 택시 바우처가 시스템 개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서강대 측은 “학생 창업기업 중 중견회사에 시스템을 납품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며 “학생의 아이디어가 실제 기술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심사를 거쳐 적극 지원했다”고 밝혔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공간인 사다리랩을 거친 택시 바우처는 법인화한 뒤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 ‘불펜’에 입주해 있다. 불펜은 사다리랩과 같이 서강대 오픈이노베이션센터에 마련된 창업 공간이지만 학교에 소정의 기부금을 내고 지분을 출자한 뒤 입주한다는 측면에서 사다리랩보다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 공간이다. 불펜에 입주한 기업은 83m²(약 25평) 규모의 독립공간에서 2년까지 임차료 없이 머물 수 있으며 법률 세무 회계 등 사업 관련 자문, 교수 멘토링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재벌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기업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는,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서강대#에프랩#창업 동아리#스타트업#택시 바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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