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에 둔감하면 과음한다? 혀에 숨은 ‘미각 유전자’ 분석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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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느끼는 수용체 유전자의 염기 순서가 과음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맛에 둔감하게 반응하게 하는 유전자를 가졌으면 과음할 위험이 높고, 쓴맛에 둔감하면 과음 위험을 낮추는 식이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의생명과학과 연구팀은 한국인 1829명의 음주 성향과 이들의 미각 수용체 유전자에 존재하는 단일염기다형성(SNP) 유전체 정보를 분석한 결과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4일 밝혔다.

SNP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네 종류의 염기인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의 배열이 개인별로 다른 것을 말한다. 사람은 인종·민족과 상관없이 유전자가 99.9% 일치하지만 0.1%의 SNP 때문에 키와 피부색이 달라진다. 미각 수용체에 있는 SNP는 음식 성분을 인식해 뇌에 신호를 보낼 때 특정한 맛을 더 강하거나 약하게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단맛과 감칠맛을 느끼는 수용체 유전자(TAS1R3)의 염기 순서가 CT형인 사람은 CC형보다 과음군에 속할 위험이 1.5배 높았고 소주를 많이 마셨다. 피험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CC형 중엔 과음자가 14%였는데 CT형은 20% 수준이었다. 과음군은 하루 평균 알코올을 30g(소주 반 병) 이상 마시는 것을 이른다.

반면 쓴맛을 느끼는 수용체 유전자(TAS2R38)의 변이로 쓴맛에 둔감해진 사람들(AVI/AVI 및 PAV/AVI형)은 그렇지 않은 PAV/PAV형에 비해 음주자가 될 확률이 25% 낮았다. 이는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기존의 연구결과와 반대다. 연구팀은 인종에 따른 차이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유전자의 염기 순서는 즐기는 술의 종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TAS2R4 유전자 TT형, TAS2R5 유전자 GG형은 각각 CC형, TT형에 비해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이 1.5배, 1.6배 많았다. TAS1R2 유전자 TC형은 TT형에 비해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40% 적었다. 이는 술도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라 각기 다른 미각 수용체에 자극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립암센터는 이처럼 개인마다 다른 맛의 민감도가 음주 성향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밝혀내면 ‘맞춤형’ 금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음주 위험도를 측정하거나 특정한 맛을 첨가한 술로 음주 욕구를 떨어트리는 식이다. 연구를 맡은 김정선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의생명과학과 교수는 “알코올의 대사 작용에 앞서 맛을 느끼는 단계에서부터 금주 정책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식욕(Appetite)’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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