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탓에 美적자 늘었다?’ 트럼프 주장에, 한국 측 협상대표 김종훈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1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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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이 아닌 관리무역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측 협상대표였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 FTA 때리기’를 이렇게 비판했다. 무역은 시장에 맡겨야 하는데 정부가 무역적자를 운운하며 조정하려 드는 건 자유무역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미 FTA 탓에 미국 적자가 늘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FTA가 불공정하다고 한다.

“공정한가, 불공정한가는 일방적 기준으로 설명이 안 된다. 한쪽에 불공정하면 또 다른 한쪽에 공정할 수 있다. 정말 공정하려면 ‘룰’이 있어야 한다. 한미 FTA는 서로 지키자고 만든 룰이다. 이 룰이 제대로 이행됐느냐가 문제다. 내가 알기론 양국 간 이행이 문제된 건 없다. 한미 FTA의 미래를 논하려면 지금까지의 이행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평가 없이 하면 사상누각이 된다.”

―정말 한미 FTA 때문에 미국 적자가 늘었나.

“미국은 우리 수출이 엄청 늘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수출을 늘린 품목은 관세 감축의 혜택을 보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2.5% 관세는 지난 4년간 그대로였지만 우리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내렸다. 그러니 ‘FTA 때문에 적자가 늘었다’는 주장은 상당히 단세포적이다.”

―미국이 정말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까?

“독일, 일본, 멕시코가 우리보다 미국 적자를 더 많이 낸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내는 적자는 250억 달러가량이다. 미국은 서비스 교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한국과의 서비스 교역에서 늘 100억 달러 흑자를 본다. 이를 포함하면 미국이 한국과의 교역에서 보는 적자는 150억 달러 정도다. 이 점을 생각하면 미국이 강도 높게 한미 FTA 재협상을 제기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미중 통상 문제가 많이 불거질 것 같다.”

―정부나 기업이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FTA 재검토 협박에 당황하고 있다. 실제 재협상이 발표된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당황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언론도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하고 필요 없는 그릇된 메시지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 재협상을 하게 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협정을 논의하는 건 필요하다. FTA 체결 뒤 두드러진 현상이 미국으로부터 전자상거래 수입이 엄청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허, 저작물 수입도 늘고 있다. 이런 ‘모바일 이코노미’가 움직이면 150억 달러가량의 대미 흑자가 뒤집어지는 건 금방이다. 이 분야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도발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경제보복도 문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북한에 대해 과거처럼 ‘맨주먹 붉은 피’로는 안 된다. 재래식 군비라도 확충해야 우리 목소리가 올라간다. 중국이 우릴 괴롭히는 이면엔 ‘한국은 이렇게 누르면 눌린다’는 인식이 있다. 중국과의 통상에서 단기적 타격이 있겠지만 우리가 어려우면 저쪽도 어렵다. 이번에는 원칙을 지키고 시련을 넘어야 이런 인식이 바뀐다.”

―2010년 협상 타결 직전 어떤 일이 있었나?

“우리가 미국 측에 중립적 장소에서 협상하자고 해서 워싱턴에서 2시간 넘게 차로 가야 하는 메릴랜드 주에서 만났다. 미국 협상팀도 짐을 싸서 우리가 있는 리조트 호텔로 왔다. 우리는 밤낮 없이 만났다. 어느 날 미국팀이 싹 사라져서 ‘무슨 일일까’ 했다. 백악관에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른 것이다. 밤 11시에 서울로 전화해 ‘백악관에서 서울로 전화를 걸 거다’라고 보고했다. 보통 정상들끼리 통화하면 30분 정도 걸리는데 1시간이 넘어도 내게 전화로 피드백을 안 주더라. 정상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도 전화를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사정이 안 좋아 어렵다’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는 얘기였다. 다음 날 양측이 4대 4로 협상했는데 마이클 프로먼 백악관 경제부보좌관과 둘이 호수를 1시간 걸으며 얘기를 했다. 이미 나올 이야긴 다 나왔고 서로 계산이 있었으니….”

―협상 타결 발표 뒤 ‘오바마의 승리’란 얘기가 나왔다.

“우린 한국에 수입되는 미국산 자동차에 매기는 관세를 8%에서 4%로 깎고 그 이후 0%로 내렸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에 수입되는 한국산 자동차 관세 2.5%를 4년 유지하기로 했으니 우리가 양보한 것이었다. (이렇게 협상하기 전에) 내가 ‘점 하나 못 고친다’고 했다가 양보해 비난을 받았다. 난처했다. 하지만 (당초 협상을 한 뒤) 양국의 정권이 다 바뀌고 나서 비준 단계로 넘어가니까 한미 FTA 논의가 (바뀐 정권의 이익에 맞게) 정치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협상이) 다 된 것을 다 죽일래? 지금이라도 조정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의 판단은 아니었다.”

―한미 FTA를 통과시키기까지 진통이 컸는데….

“민주주의에선 찬반이 늘 있기 마련이다. 국회 안에서 합의가 도출된다는 기대가 있으면 사람들이 참는다. 그렇지 않으면 거리로 나가는 거다. 돌이켜 보면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았다.”

조은아 기자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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