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일자리 윈윈… 트럼프정부 비판 이해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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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발효 5년]양국 실무 협상 주역 김종훈-웬디 커틀러 인터뷰

2007년 6월 21일 서울 외교통상부에서 당시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오른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을 시작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07년 6월 21일 서울 외교통상부에서 당시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오른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을 시작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15일로 발효 5주년을 맞는다. 한국 정부는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자동차에 붙는 관세 폐지를 유예해 ‘굴욕 협상’이란 비판에 시달렸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한미 FTA는 오바마의 승리’(워싱턴포스트)란 호평을 받았다. 발효 5주년을 맞아 양국은 새로운 무역환경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산 제품의 미국 수출이 크게 늘어난 점을 들어 한미 FTA를 ‘미국 일자리를 죽이는 재앙’이라 공격하며 재협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당시 실무 협상을 맡아 ‘한미 FTA 산파’로 불리는 웬디 커틀러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보와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각각 뉴욕과 서울에서 만나 최근 한미 간 통상 분쟁의 본질과 한국의 대응 방안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

● 김종훈 前 통상교섭본부장


“자유무역이 아닌 관리무역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측 협상대표였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은 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 FTA 때리기’를 이렇게 비판했다. 무역은 시장에 맡겨야 하는데 정부가 무역적자를 운운하며 조정하려 드는 건 자유무역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미 FTA 탓에 미국 적자가 늘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FTA가 불공정하다고 한다.

“공정한가, 불공정한가는 일방적 기준으로 설명이 안 된다. 한쪽에 불공정하면 또 다른 한쪽에 공정할 수 있다. 정말 공정하려면 ‘룰’이 있어야 한다. 한미 FTA는 서로 지키자고 만든 룰이다. 이 룰이 제대로 이행됐느냐가 문제다. 내가 알기론 양국 간 이행이 문제된 건 없다. 한미 FTA의 미래를 논하려면 지금까지의 이행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평가 없이 하면 사상누각이 된다.”

―정말 한미 FTA 때문에 미국 적자가 늘었나.

“미국은 우리 수출이 엄청 늘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수출을 늘린 품목은 관세 감축의 혜택을 보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2.5% 관세는 지난 4년간 그대로였지만 우리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내렸다. 그러니 ‘FTA 때문에 적자가 늘었다’는 주장은 상당히 단세포적이다.”

―미국이 정말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까.

“독일, 일본, 멕시코가 우리보다 미국 적자를 더 많이 낸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내는 적자는 250억 달러가량이다. 미국은 서비스 교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한국과의 서비스 교역에서 늘 100억 달러 흑자를 본다. 이를 포함하면 미국이 한국과의 교역에서 보는 적자는 150억 달러 정도다. 이 점을 생각하면 미국이 강도 높게 한미 FTA 재협상을 제기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미중 통상 문제가 많이 불거질 것 같다.”

―정부나 기업이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FTA 재검토 협박에 당황하고 있다. 실제 재협상이 발표된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당황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언론도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하고 필요 없는 그릇된 메시지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 재협상을 하게 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협정을 논의하는 건 필요하다. FTA 체결 뒤 두드러진 현상이 미국으로부터 전자상거래 수입이 엄청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허, 저작물 수입도 늘고 있다. 이런 ‘모바일 이코노미’가 움직이면 150억 달러가량의 대미 흑자가 뒤집어지는 건 금방이다. 이 분야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를 통과시키기까지 진통이 컸는데….

“민주주의에선 찬반이 늘 있기 마련이다. 국회 안에서 합의가 도출된다는 기대가 있으면 사람들이 참는다. 그렇지 않으면 거리로 나가는 거다. 돌이켜 보면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았다.”

―북한의 도발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경제보복도 문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북한에 대해 과거처럼 ‘맨주먹 붉은 피’로는 안 된다. 재래식 군비라도 확충해야 우리 목소리가 올라간다. 중국이 우릴 괴롭히는 이면엔 ‘한국은 이렇게 누르면 눌린다’는 인식이 있다. 중국과의 통상에서 단기적 타격이 있겠지만 우리가 어려우면 저쪽도 어렵다. 이번에는 원칙을 지키고 시련을 넘어야 이런 인식이 바뀐다.”



● 웬디 커틀러 前 USTR 대표보


“내가 걱정하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검토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 재협상을 미국으로 일자리를 되찾아오는 데 이용하겠다는 (일방적이고 잘못된) 시각이 문제란 얘기다.”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소장(사진)은 10일 오후 뉴욕 맨해튼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한미 FTA 5주년 좌담회’ 직후 기자와의 별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미 FTA 협상 당시 미국 수석대표였던 그는 “새 정부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비즈니스맨 출신이 많고 그들의 세계엔 ‘이기느냐 지느냐’의 게임만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가 간 통상 협상은 반드시 서로에게 이익인 윈윈 게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틀러 부소장은 “한미 FTA야말로 대표적 윈윈 협정”이라며 “단순히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 측면에서만 평가해 잘못된 협정이라고 비판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는 ‘한미 FTA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이라고 비판한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한미 FTA는 두 나라 모두에서 일자리를 창출했고 양국의 무역량도 계속 증가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 원인이 단순히 FTA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시기 한국의 경제 성장이 부진한 반면 미국은 수입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이 협정은 양국 경제에 모두 도움을 주면서 잘 작동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FTA 발효 전인 2011년 미국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8.5%였지만 지난해 10.6%까지 높아졌고 같은 기간 한국의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도 2.6%에서 3.2%로 증가했다. 이 기간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 금액은 총 511억8000만 달러(약 59조3688억 원)로, 미국의 한국 직접투자(201억6000만 달러)를 크게 웃돈다.

―그래도 트럼프 정부는 재협상을 추진할 기세다.

“일반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기존 무역협정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필요한 부분에 대한 개선이나 수정을 시도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도 그런 시도가 있었다. 트럼프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캐나다, 멕시코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등 다른 나라들과 재협상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어떻게 협상하면 좋겠느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NAFTA 같은) 다른 재협상 과정에서 드러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스타일이나 전략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트럼프는 비즈니스맨 출신이다. 그리고 여러 FTA에 대해 이미 큰소리를 쳐왔다. 그런 큰소리가 실제 협상에서도 그대로 실행되는지, 최종 결론에는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는지 등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들은 ‘미중 간 고래 싸움에 한국 같은 작은 나라만 새우등 터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아시아의 많은 국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미국이 중국 제품에 20%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면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1.4% 감소하고, 한국 GDP도 0.5% 감소한다는 분석보고서가 있다. 트럼프 정부가 양자 간 무역 관계도 그 상대국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많은 국가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부터 이해했으면 좋겠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한미#fta#트럼프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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