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왕규창]뇌질환 치료 위해 뇌은행 시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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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규창 뇌연구포럼 대표 서울대 의대 교수
왕규창 뇌연구포럼 대표 서울대 의대 교수
필자는 2015년 1월부터 2년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뇌은행장으로 일했다. 뇌은행은 뇌질환 환자나 일반인이 사망하면 뇌를 적출한 뒤 보관하다가 과학자나 의학자들이 신경과학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부검에 대한 거부감이 커 뇌 기증에 동의하는 환자나 유가족은 아직 드물다. 그래도 필자는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필자가 일하는 서울대병원에서는 뇌 기증이 예전에는 1년에 2, 3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3건으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왜 뇌은행을 만들고, 인간의 뇌를 직접 연구해야 하는 걸까. 동물의 뇌만으로 충분한 건 아닐까. 동물의 뇌는 인간의 뇌와 구조와 기능이 다를 뿐 아니라, 뇌질환의 종류나 증상도 차이가 크다. 어떤 이는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양성자단층촬영(PET)과 같은 첨단 뇌검사 장비가 있는데 왜 뇌조직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이는 오해다. 아직도 뇌 전체를 신경병리학적인 방법으로 검사하지 않고서는 진단 자체가 불가능한 뇌질환이 많다.

국내 뇌과학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 뇌과학 선진국의 70% 정도 역량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시험관 실험, 세포 배양 실험, 컴퓨터 자료 분석, 동물 실험 자료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오면서, 기초 뇌과학자 사이에서는 인체 뇌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 플랫폼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의대와 병원의 임상의학자 역시 뇌과학의 융합적 발전을 위하여 뇌은행 사업이 필요하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브라질, 일본 등 여러 나라가 인체 뇌를 기반으로 하는 뇌과학 연구에서 많이 앞서 있다. 우리 실정은 아직 초라하다. 동물 실험에서 훌륭한 기초 연구를 수행한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해외 학술대회에 나가 “앞으로 인체에서도 확인해 볼 예정”이라는 말만 10년 넘게 해 왔다.

뇌은행이 성공하려면 안정적인 장기 투자와 인력 양성 등도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부검과 관련해 아직 논란이 많은 법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법 문제가 해결되면 문화적 장벽을 넘을 수 있는 홍보와 인식 전환을 통해 뇌 기증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인체 뇌 연구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나라는 신경과학 선진국의 꿈을 포기한 나라다.

왕규창 뇌연구포럼 대표 서울대 의대 교수
#뇌질환 치료#뇌은행#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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