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대선 주자가 내놓아야 할 일자리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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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막 열린 조기 대선, 후보마다 일자리 공약 제시
고민 없는 근시안 정책으론 일자리 문제 풀기 어려워
근로-자영업 이분법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에 맞추어 시대에 맞는 노동정책 제시해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드디어 구름이 걷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통령선거전이 시작되었다. 60일도 남지 않은 선거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통합과 미래를 책임질 후보들이 저마다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선거 승리를 위한 경주를 시작했다. 생활이 어렵고 미래가 불안한 민초들의 가장 큰 염원은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어떤 언론은 이번 대선을 ‘일자리 대선’이라고 표현하였다. 안보와 통상 문제도 결국 민초들에겐 일자리, 먹거리 문제이므로 일자리정책은 대선 후보들 간에 가장 중요한 경쟁요소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잠재적 후보자들이 내건 일자리정책의 내용은 대부분 상투적이고 단기적이다. 물론 고령사회의 새로운 서비스 수요를 감안한 타당한 일자리정책도 있지만, 공공부문을 바짝 털어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든지, 휴일근로를 줄이고 연차휴가 사용을 소진하게 해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발생시킨다든지, 기본소득제를 실시해서 전통시장과 내수를 진작시키면 기업이 일자리를 더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거나 주변적인 해법일 수밖에 없다. 근로감독관을 대폭 증원하여 근로시간 단축을 독려한다고 바로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진 않는다. 기업은 훨씬 더 정교한 자동화설비를 구축하거나 생산공장의 이전을 고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확대하고 고비용 구조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면 채용 인원을 대폭 늘리면 된다. 전통시장 상품권과 현금을 푼다고 미래의 경쟁력 있는 산업이나 기업들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합리적인 정책수단과 치밀한 과정이 결여된 이런 구호성 정책들은 이미 그동안 치러진 선거에서 익숙하게 들어 온 상투적인 공약(空約)이다.

일자리정책은 결국 산업정책이나 경제정책과 연결된다. 우리나라의 유망 성장산업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4차 산업혁명이 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노동시장의 변화는 더욱 구조적이고 전면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전통적인 양질의 일자리 상당수가 없어질 것이다. 전통적인 산업을 대체하는 플랫폼 경제가 시장의 지배자가 되고, 그 결과 주문형 경제, O2O(온·오프라인 연결) 커머스라는 형태로 배달·운송·소개 등 다양한 서비스 분야에서 1인 자영업자가 확산되며, 정보기술(IT) 산업을 중심으로 크라우드워커라는 불안정 취업자들이 양산될 것이다. 따라서 일자리정책은 4차 산업혁명의 명암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우리나라를 국제적으로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 수 있는 노동법 제도 개혁과 그 종사자들을 위한 합리적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여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정책은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제조업 중심의 전통적인 근로자 개념에 맞춰진 근로기준법을 자영업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시킬 것이다. 오히려 취업 형태에 따라 보호 필요성의 정도가 달라지므로 그에 맞게 노동법이 모듈화되어야 한다. 크라우드워커 등 1인 자영업자에게 사회안전망과 공정한 계약규칙을 적용하고,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에게는 노동법의 일부 제도를 적용하되, 근로자 중에도 보호 필요성 및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임금, 근로시간, 해고 등 노동법의 적용을 다양화해야 한다. 즉, 노동법은 이제 근로자와 자영업자에 대한 ‘all or nothing’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조금 더 보호받는 자와 조금 덜 보호받는 자(more or less)의 원칙에 따라 재설계되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젊은 진보정치가 마테오 렌치는 오랜 세월 이탈리아의 노동시장과 경제를 경직시켜 온 노동법 제도의 개혁을 자신의 진보정치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노동시장과 사회보장 개혁을 독일병의 치료제로 삼고 독일 국민을 설득시켰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치러지는 전무후무한 선거이다. 그런 만큼 후보자들은 비상한 각오로 대선에 임해야 한다. 상투적인 선동과 공약의 남발은 이미 촛불로 뜨겁게 달궈진 국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은 종전과 다른 새로운 지도자상을 요구할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는 미래사회의 비전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구체적이고 정교한 정책과 논리를 가지고 현실적인 목표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소 더디고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그러한 지도자라면 국민들은 기꺼이 그와 함께할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기 대선#일자리 공약#4차 산업혁명#일자리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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