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묶인 도시바 인수전… ‘반도체 한국’ 타격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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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禁 최태원 SK회장 출장 무산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반도체사업부를 둘러싼 인수전은 업계 판도를 단번에 바꿀 수 있는 올해 최고의 ‘빅딜’이다. 매각대금 25조 원으로 추정되는 이 대어를 누가 낚느냐에 따라 ‘산업의 쌀’로 불리는 각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미국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 대만의 TSMC와 훙하이그룹, 중국 칭화유니그룹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가 관심을 갖고 있지만 투자 결정권을 가진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의 출국 금지 등에 발목이 잡혀 있다.

13일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40.1%), SK하이닉스(17.2%), 마이크론(15.5%), 도시바(8.9%), 웨스턴디지털(7.0%) 순이다. 반독점 규제가 걸릴 1위 삼성을 뺀 2, 3, 5위 업체가 4위 도시바 쟁탈전에 나섰다. SK하이닉스가 인수에 성공한다면 3위 그룹과의 격차를 10%포인트 이상 벌릴 기회지만 실패할 경우 2위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

‘도시바 이펙트’가 가장 극명하게 반영될 시장은 낸드플래시다. 1987년 도시바가 처음 개발한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장점 때문에 D램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축을 형성해 왔다.


낸드플래시 시장 1위는 삼성, 2위는 도시바다. 이 시장 세계 5위인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한국 반도체산업은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마저 장악할 수 있다. 반면 3위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를 가져간다면 점유율 35.0%로 삼성(35.4%)을 바짝 추격하게 된다.

반도체업계에서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는 중국 기업의 도시바 인수다.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자본력이 더해져 낸드플래시 업계의 판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업계에서 인수합병(M&A)은 새로운 사업 진출이나 기존 사업 덩치를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이용됐다. 2013년 미국 마이크론은 일본 엘피다를 인수해 109.2%의 매출 성장률을 올리며 전체 반도체(메모리+비메모리) 시장 10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25조 원을 모두 부담할 수 있는 회사는 제한적이다. 훙하이그룹은 13조 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지만 반도체 양산 경험이 없어 공동 인수자를 물색하고 있다. 14조 원을 보유 중인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와 그룹 오너끼리 친분이 있는 SK하이닉스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최대 11조 원까지 베팅한다는 계획이어서 독자 인수는 어렵다.

일본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 움직임은 새로운 변수다. 로이터통신은 10일(현지 시간) 도시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국가 안보 관점에서 미국이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할 수 있는 유일한 파트너”라고 전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간부도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시바를 애플 같은 미국 기업에 넘기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재계에서는 엘피다 등 일본 기업 인수 경험이 있는 마이크론과 도시바와 합작공장을 세우며 오랜 협력관계를 가져온 웨스턴디지털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자국을 뛰어넘은 한국을 견제하려는 심리도 있다.

문제는 최 회장에 대한 출금 조치가 풀리지 않으면서 SK하이닉스가 제대로 된 싸움조차 벌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해외 기업들이 SK와 전략적 제휴를 맺으려 할지도 의문이다.

도시바는 이달 29일까지 각 업체로부터 인수의향서를 받는다. 6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내년 3월까지 매각을 완료할 계획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도시바#인수#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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