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30년간 판소리 연구… “판소리 콘텐츠 살려 일자리 만들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74> ‘판소리 공무원’ 김용근 씨

김용근 씨는 평범한 시골 공무원이지만 판소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판소리 백과사전’ ‘판소리 연구계 강호의 고수’로 통한다. 30년 동안 휴일과 휴가를 판소리 연구와 조사에 바친 그는 종합 인문학인 판소리의 콘텐츠를 살려 지역 문화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김용근 씨는 평범한 시골 공무원이지만 판소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판소리 백과사전’ ‘판소리 연구계 강호의 고수’로 통한다. 30년 동안 휴일과 휴가를 판소리 연구와 조사에 바친 그는 종합 인문학인 판소리의 콘텐츠를 살려 지역 문화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전북 남원시에서 경기 수원시까지 84차례나 올라갔다. 판소리 가왕(歌王)이자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의 후손을 찾기 위해서다. 한 일본인이 들려준 ‘송 명창의 후손이 수원세무서 부근에 살았다더라’는 말이 유일한 단서였다. 주말마다 수원에 올라가 세무서 주변 오래된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문패에 ‘송’자 들어간 집의 초인종을 누르기 몇 년째…. 마침내 후손을 찾아냈다. 정작 후손은 자신의 고조부(송흥록)와 조부(송만갑)가 그 유명한 판소리 명창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전북 남원시 대산면사무소 산업계장(6급)이자 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인 김용근 씨(57). 그는 30여 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발품을 팔아 판소리 관련 자료를 수집해 왔다. 판소리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소리꾼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판소리 연구자들 사이에 ‘판소리 백과사전’으로 통한다. 판소리 관련 책과 보고서를 20여 권이나 펴냈고, 그의 자료를 기초로 쓴 판소리 논문도 20편이 넘는다.

○ 판소리 연구계의 고수


남원은 판소리의 고장이다. 송흥록 송만갑 박초월 강도근 등 수많은 명창이 태어나고 소리를 하다 스러져간 곳이다. 남원의 소리는 동편제다. 동편제는 통성(지르는 소리)을 사용하기 때문에 남성적이다. 남원을 감싸고 있는 지리산의 웅혼하고 강건한 모습을 닮았다. 전남 보성과 구례, 전북 고창 등 전라도 땅에는 유장한 판소리 가락과 명창의 흔적이 배어 있는 곳이 많지만 유독 남원 사람들의 판소리에 대한 자존심은 각별하다. 남원시 운봉읍에 ‘국악의 성지’가 조성돼 있고 남원시에는 국립국악원과 시립국악원이 자리해 자긍심 또는 높다.

남원에 소리꾼이 유난히 많았던 것은 남원에서 좋은 북이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원은 지리산의 좋은 목재와 큰 소시장에서 나오는 소가죽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좋은 북을 원하는 명창들이 자신에게 맞는 북을 얻기 위해 꼭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이유는 또 있다. 남원 운봉의 만석꾼 박씨 집안의 후원이 컸다. 이 집안은 소리를 좋아해 ‘운악정’이라는 별장을 짓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창을 불러 먹여 살리며 공연을 열었다.

남원에서 태어나 남원에서만 평생 공무원을 하면서 살아온 김 소장이 판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남원농고에 다닐 때였다. 향토문화를 조사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판소리와 소리꾼을 접하게 됐다. 그의 고향인 주천면에는 소리꾼들의 수련 장소로 유명한 구룡폭포와 육모정이 있었고, 김정문 명창묘와 권삼득 명창 기적비 등 판소리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젊은 시절 북을 만들던 장인이었다.

1986년 그가 공무원이 됐을 때 남원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늘기 시작했다. 판소리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 많았지만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안내자가 없었다. 주말마다 판소리 흔적을 찾기 위해 지리산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판소리와 지리산 문화 관련 책과 논문 400여 편을 수집해 읽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아예 남원시 어현동 강도근 명창 집 옆으로 이사했다. 매일 찾아다니며 소리와 북을 배웠다. 소리와 북을 익힌 것은 조사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리꾼들은 소리와 북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속 깊은 얘기를 털어 놓지 않는다고 한다. 제대로 된 판소리 사전을 만들기 위해 남원 국립국악원이 6년 동안 펼친 판소리 공연을 모두 녹음하기도 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판소리는 깊은 세계였다. 기록으로 다 알 수 없는 명창들의 삶은 더욱 신비로웠다. 판소리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종합인문학’이었다. 판소리 시설은 풍수지리에서 역사, 한의학까지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1989년 1인 연구소인 지리산판소리문화연구소를 냈고 생활사까지 관심 분야가 넓어지면서 연구소 이름도 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로 바뀌었다. 30년 넘게 발로 뛰며 찾아낸 자료와 기록을 근거로 ‘판소리 사전’ ‘판소리 평전’ ‘소리꾼으로 지리산을 말하다’ ‘동편제 유적지 발굴보고서’ 등을 펴냈다. 명창들의 족보와 호적대장을 뒤지고 후손들을 만나 동편제 전승 과정에서 주요 인물이자 조선 후기 8명창의 하나인 장재백 명창과 송우룡 명창 등 수많은 명창의 잘못된 가계도와 출신지 등을 바로잡았다.

○ 판소리 ‘융합 연구’ 절실

김 소장은 그동안 주말과 휴가를 온전히 판소리 자료 수집에 보냈다. 그렇다 보니 승진이 늦어져 7급을 20년 동안 달기도 했다. 차고 넘치는 자료 때문에 집도 수차례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여전히 학계에서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판소리 연구자와 학생들이 문턱이 닳도록 그의 집을 찾고, 그가 발굴한 자료를 갖다 쓰면서도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끔 씁쓸하기도 하지만 일일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발굴한 자료가 판소리와 생활사 연구를 진전시키는 데 쓰이면 그것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그는 판소리 연구가 아직도 ‘사설 어떤 부분이 틀렸네, 맞네’ ‘명창 출생지가 목포가 맞네, 남원이 맞네’를 다투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판소리 연구가 한계를 못 벗어나는 것은 학문 융합을 허용하지 않는 환경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소장은 판소리에 담긴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옛 사람들의 지혜를 지역 관광과 일자리를 만드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와 함께 동편제에 대한 대하소설과 영화 제작을 추진 중이다.

“아버지께서 공무원을 하려면 농부처럼 오전 7시 이전에 출근하고 월급의 30%는 네 것이 아니니 다른 목적에 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너만의 질서를 세워 살아라’고도 하셨지요. 저는 아버지 말씀대로 판소리를 연구하는 데 30%의 시간과 돈을 쓴 셈입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