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중국에 ‘No’라고 말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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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경제부 차장
박용 경제부 차장
대만은 지난해 중국의 날카로운 발톱을 보았다. 2016년 1월 독립 노선을 보이는 친미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이 차기 대만 총통에 당선되자, 중국 정부는 대만 여행 축소를 지시했다. 연간 1억 명 이상 해외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을 전략자산으로 활용한 중국의 현대판 ‘인해전술’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은 전년 대비 16% 줄었다.

15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하고 있는 중국의 한국 여행 금지령이 시행되면 대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는 외교 실책”이라는 여론이 끓어오르기를 바라며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란 책을 쓴 중국 전문가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는 모든 국가를 평등한 주체로 해석하는 서구식 국제질서가 저물고 주변 국가와의 불평등 관계와 수직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과거 ‘조공제도’가 부활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으로 중국에 ‘노(No)’라고 말할 때마다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노’라고 말해야 한다면 중국에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은 중국이다. 외국인 방문객의 절반도 중국인이다. 중국에 의지할수록 중국 중심의 수직적 위계질서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미 하원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처럼 중장기적인 중국 의존도와 위험요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당장은 유커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급선무다. 한국인의 여행비 지출 중 국내 여행 비율은 50∼60%에 불과하다. 이 비율이 일본(90%) 수준만 돼도 유커 인해전술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봄과 가을에 하는 여행주간 같은 일회성 행사로는 부족하다. 이참에 365일 국내 여행이 활성화되도록 국내 관광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몽니에 맞서 대만 정부는 공무원의 국내 휴가를 유도하는 ‘국민여행카드 제도’를 도입해 자국 관광산업 방어에 나섰다. 공무원 1인당 연간 1만6000대만달러(약 60만 원)의 휴가수당을 주고 이 중 절반을 국내 여행에서 쓰게 한 것이다. 대만의 사례에서 한국이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면 태국처럼 숙박비, 단체여행 상품 구매 등 국내 여행비 지출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를 한시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김희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숙박비와 단체여행비에 대해 100만 원 한도에서 소득공제나 세액공제를 도입하면 연간 2155억∼3612억 원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예상했다. 비용과 효과를 면밀히 따져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직장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한다. 연차를 절반도 쓰지 못한다. 프랑스의 ‘체크바캉스’(근로자 휴가지원)처럼 근로자와 기업, 정부가 분담해 여행 자금을 적립하고 국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할 수도 있다. 연차도 소진하고 국내 여행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몸집이 작은 정어리들이 포식자의 위협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거대한 무리를 지어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것뿐이다. 중국에 1억 명의 유커 부대가 있다면 한국엔 위기 때마다 똘똘 뭉친 5000만 명의 국민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으면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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