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日 신여성, 삶의 길을 찾아 유럽으로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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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아쓰코 에세이집/스가 아쓰코 지음·송태욱 옮김/전 3권·각 권 228∼304쪽/1만2500∼1만3500원·문학동네

“여자가 여자다움이나 인간의 존엄을 희생하지 않고 학문을 계속하려면, 혹은 결혼만을 목표로 두지 않고 사회에서 살아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해외여행조차 보편적이지 않던 1960년대, 패전의 흔적이 남은 일본을 뒤로하고 유학길에 오른 진취적인 여성이 있다. 연구자이자 번역가, 수필가로 활동한 일본 작가 스가 아쓰코다. 그의 첫 에세이이자 제30회 여류문학상 수상작인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비롯해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베네치아의 종소리’ 등 3권의 책이 나왔다.

여학교를 졸업한 뒤 신부수업에 전념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작가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일본 최초의 여자대학에 1기로 입학한다. 이후 보다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과 학문적 호기심을 안고 유럽으로 떠난다. 에세이에는 독립적인 삶을 꿈꾸며 이국으로 떠났다가 10여 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온 작가의 긴 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예순 살의 나이에 기억을 더듬으며 쓴 첫 에세이인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움베르토 사바, 조반니 파스콜리 등 이탈리아 유명 문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다. 문학에서 받은 영감은 작가가 13년간 밀라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만난 친구들, 거닐던 도시의 정경과 버무려지며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소녀적 감수성이 풍기는 부분도 있지만 여성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주체적인 삶을 고민한 젊은이의 사유의 흔적이 더 크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대륙을 휩쓴 가톨릭 학생운동을 이방인으로서 지켜본 경험담을 펼쳐내고, ‘베네치아의 종소리’에선 유년시절과 유학 초기, 예순이 넘어 글을 쓰는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유려한 필치로 써내려간다. 일본과 유럽, 두 공간을 넘나든 한 여성의 내밀한 일기장을 엿보는 듯하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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