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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전쟁에 휩쓸린 국가… 망가진 개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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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전쟁에 휩쓸린 국가… 망가진 개인의 삶

손택균기자 입력 2017-03-11 03:00수정 2017-03-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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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앤터니 비버 지음/김규태 박리라 옮김/1288쪽·5만5000원·글항아리
1944년 6월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한 미군 공수부대에 투항한 한국인 양경종(왼쪽). 18세 때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다가 차례로 소련군과 독일군의 포로로 붙잡힌 그의 서글픈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머리말이다. 글항아리 제공
21세기로 접어들어 적잖은 세월이 흐른 지금, 20세기의 전쟁을 다룬 이 무지막지하게 두툼한 책을 읽어야 할 까닭이 뭘까. 전쟁 발발 직전인 1930년 즈음의 상황을 기술한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썼다.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로 공포와 증오가 되풀이되는 가운데 선동적인 발언들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우려를 낳았다. 이원론이 부상하며 타협을 기저로 한 민주적 중도주의는 깨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이 등장한 집단주의 시대에 군인은 물론 좌우 양측 지식인들도 폭력적 해결을 더없이 훌륭한 난국 타개책으로 여겼다.”

전제를 지우고 따로 떼어내 읽을 때 이 문장들을 ‘20세기’에 국한한 이야기라 여길 수 있을까. 평화는 당연한 것인 양 오해받기 쉽다. 전쟁을 벗어난 시기에 과거의 전쟁에 대한 고찰을 이어가는 건 그 안이한 오해를 경계하려는 노력이다.


지은이는 71세의 영국인 전쟁사가다. 독일과 소련이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 스페인 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20세기의 여러 전투에 대한 책을 발표해온 그가 방대한 구체적 자료를 한데 모아 펴낸 책이다. 한국어판 출판사가 스스로 ‘침대에 누워 읽기 좋은 벽돌 책’이라 알릴 만큼 부피와 무게가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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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넘기며 잡은 목표는 어떻게든 기사 마감 전까지 최대한 많은 분량을 읽어 넘기는 것이었다. 원작자의 글맛 덕인지 번역문의 성과인지 알 길 없으나 막힘없이 술술 읽히도록 정리한 문장이 책의 물리적 부담을 덜어준다. 첫머리에 삽입한 자료사진의 주인공이 한국인인 점도 몰입의 탄력을 더한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를 침공했을 때 한 젊은 독일군 병사가 미군 공수부대에 투항했다. 한국인 양경종. 그는 1938년 18세 때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관동군에 배치됐다가 1년 뒤 만주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에게 붙잡혔고, 다시 소련의 붉은 군대에 투입됐다가 1943년 우크라이나에서 독일군에게 붙잡혔다.”

영국 포로수용소에 구금됐다가 석방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과거를 숨긴 채 살다가 1992년 일리노이 주에서 사망했다는 이 한국인의 기구한 삶 이야기는 수십 년 전 지구 위를 뒤덮었던 포화가 모든 지구인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었음을 아프게 확인시킨다.

대개의 세계사 책이 제2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을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잡는 반면 이 책은 그보다 3개월 앞서 벌어진 소련군과 일본군의 노몬한 전투를 서막에 배치했다. 이때 예상 밖의 참패를 당한 일본이 1941년 겨울 독일의 소련 공격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전쟁의 판도가 갈렸다고 본 것이다.

시선의 범주를 변환하는 리듬감이 돋보인다. 국가 간의 전반적 갈등 상황을 짚어나가다가 디테일한 전투 장면을 근접해 묘사하거나 아우슈비츠 등 특정 시설이 겪은 변화를 흥미롭게 알려준다. 자료를 긁어 묶어 분량을 과시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하나의 대상과 관련해 여러 시점에 흩어진 사실(史實)을 유연하게 꿰어냈다. 히틀러 등 주요 인물의 심리 해석에 대해서는 독자에 따라 호오(好惡)가 갈리겠으나 극단적 단정은 드물다.

“역사는 결코 깔끔하지 않다”고 전제한 저자는 지구 위에서 같은 시기에 벌어진 주요 사건들이 한줄기로 엮여 있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서구의 시선에서 당연한 듯 정리돼 고정된 전쟁사의 틀을 벗어나 유럽과 아시아의 변화를 균형 있게 살폈다. 묵직한 책거리의 쾌감을 만끽하고 싶은 독자에게 도전을 권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제2차 세계대전#앤터니 비버#전쟁#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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