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고아 1000명 구출’ 숭고한 뜻 기립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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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헤스 美공군대령 공적비 제막
1·4후퇴 직전 수송기 15대 동원… 제주로 피신… 보육원 설립 주도
20여년간 전쟁고아 위한 모금활동

딘 헤스 미 공군 대령의 장남 래리 씨(왼쪽) 등 유가족들이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설립된 헤스 대령 공적기념비를 바라보고 있다(두번째 사진). 첫번째 사진은 1951년 제주를 방문한 헤스 대령(오른쪽)이 한국보육원 인근 제주기지를 찾아온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모습. 공군 제공
딘 헤스 미 공군 대령의 장남 래리 씨(왼쪽) 등 유가족들이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설립된 헤스 대령 공적기념비를 바라보고 있다(두번째 사진). 첫번째 사진은 1951년 제주를 방문한 헤스 대령(오른쪽)이 한국보육원 인근 제주기지를 찾아온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모습. 공군 제공
6·25전쟁 당시 전쟁고아 1000여 명을 구한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1917∼2015)의 공적 기념비가 9일 제주도에 세워졌다. 이날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정경두 공군참모총장과 김방훈 제주도 정무부지사,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국회의원, 헤스 대령의 아들 래리 헤스 씨(75)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헤스 대령은 6·25전쟁 때 한국 공군에 F-51 전투기를 인도하고 조종사를 양성하는 부대의 책임자로 활약했다. 당시 한국 공군 정비사가 헤스 대령의 전투기에 쓴 ‘신념의 조인(鳥人)’이라는 글귀는 한미 공군의 혈맹(血盟)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헤스 대령은 1·4 후퇴 직전인 1950년 12월 미 공군 수뇌부를 설득해 서울의 전쟁고아 1000여 명을 C-54 수송기 15대에 태워 제주도로 피신시키고, 이들을 위한 보육원 설립을 주도했다. 이후 그에게는 ‘전쟁고아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휴전으로 귀국한 뒤에도 수시로 한국을 찾아 고아들을 지원하고, 20여 년간 전쟁고아를 위한 모금 활동을 했다. 정부는 그의 헌신적 노력을 기려 무공훈장과 소파상을 수여했다.

제주도에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생전에 그가 밝힌 소망 때문이다. 그는 ‘전송가(Battle Hymn)’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전쟁고아의 고통과 희생을 기억하는 기념비를 세우고 ‘우리가 구조할 수 없었던 생명들을 추모하며’라는 글귀를 새겨 달라고 했다.

공군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작년 4월부터 기념비 건립을 추진했다. 서울 광림교회가 제작 비용을 지원했고, 제주도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도움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기념비는 수송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전쟁고아를 표현한 기념탑과 헤스 대령의 출격 모습을 담은 조각, 전쟁고아를 위한 추모 글이 새겨진 비석 등으로 구성됐다.

행사에 참석한 아들 래리 씨는 “아버지의 희생과 헌신이 기억될 수 있도록 힘써 준 한국 공군과 제주도에 각별한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6·25전쟁#딘 헤스 미국공군대령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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