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아사카와 다쿠미와 小盤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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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옛 망우묘지공원)에 있는 아사카와 다쿠미의 무덤.
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옛 망우묘지공원)에 있는 아사카와 다쿠미의 무덤.
2012년 개봉된 한일 합작영화 ‘백자의 사람―조선의 흙이 되다’. 일제강점기, 한국에 살았던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의 삶을 다룬 영화다. 그는 형 아사카와 노리타카를 따라 1914년 한국에 건너왔다. 한복을 입었고 한국말을 했다. 한국의 산을 푸르게 하는 데 헌신했으며 한국의 백자와 공예품을 사랑하고 열심히 수집했다.

유명한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한국의 공예에 눈뜬 것도 아사카와 형제 덕분이었다. 1916년 형 아사카와가 야나기에게 조선의 청화백자를 선물했고 이를 계기로 야나기는 한국 공예에 빠져들었다. 아사카와 형제와 야나기는 조선의 도자기와 목공예품, 금속공예품 등을 모아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웠다.

영화에서 아사카와 다쿠미는 “백자 같은 사람”이라 불렸다. 백자를 수집 연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소반(小盤)이다. 그는 소반을 수집 조사 연구했고 그 결과를 담아 1929년 ‘조선의 소반(朝鮮の膳)’이라는 책을 냈다. 국내 최초의 소반 연구서다. 책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금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소반이 사라지게 될 것을 염려하여 일단 기록하게 되었다.’ 한국의 소반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했던 그였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조선의 소반은 순박한 아름다움에 단정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친숙하게 봉사하며 세월이 흐를수록 아취를 더해가니….’

그때까지 소반은 그저 평범한 일상용품이었다. 그런데, 아사카와 다쿠미는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냈다.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소반을 감상하며 미적으로 감동하기 시작했다. 일상용품이 미술품으로 바뀐 것이다. 요즘 우리가 소반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아사카와 다쿠미 덕분이 아닐 수 없다.

1931년 그는 서울에서 식목행사를 준비하다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식으로 장례를 치렀고, 한국 사람들이 앞다퉈 그의 상여를 멨다. 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옛 망우묘지공원)에 가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그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엔 항아리 모양의 돌 조각이 하나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그의 형이 조선백자를 모티브로 삼아 조각한 것이다. 묘비엔 이렇게 써 있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4월 2일은 아사카와 다쿠미의 기일이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
#백자의 사람#일제강점기#아사카와 다쿠미#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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