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긴급진단] <상>부끄러운 민낯, 화장을 지워보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3월 9일 05시 30분


한국야구는 2017 WBC를 통해 그간 감춰왔던 민낯을 하나하나 드러내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지만, 그에 맞게 내실을 다져왔는지, 국가대표라는 무게감을 가벼이 여기지는 않았는지를 묻는다. 6일 이스라엘전을 1-2로 진 뒤 고개 숙이고 있는 한국선수단. 스포츠동아DB
한국야구는 2017 WBC를 통해 그간 감춰왔던 민낯을 하나하나 드러내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지만, 그에 맞게 내실을 다져왔는지, 국가대표라는 무게감을 가벼이 여기지는 않았는지를 묻는다. 6일 이스라엘전을 1-2로 진 뒤 고개 숙이고 있는 한국선수단. 스포츠동아DB
한국야구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8일 네덜란드가 대만에 승리하면서 9일 대만전 결과와 관계없이 탈락이 확정됐다. 사상 처음 한국에서 열리는 WBC에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2연패를 당해 충격은 더욱 컸다. 야구는 그리 단순한 스포츠는 아니다. 우승팀도 2경기에서 2연패를 할 수 있고, 꼴찌도 2연승을 할 수 있는 게 야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결과만 놓고 “한국야구는 망했다”고 호들갑을 떨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실패를 두고 아무런 반성 없이 넘어간다면 우리는 발전과 전진을 할 수 없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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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화내빈-거품은 없었나?

한국야구는 최근 발전을 거듭했다. KBO리그는 10개 구단으로 외연을 확장했고, 지난해 사상 최초로 800만 관중을 돌파하며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FA(프리에이전트) 시장에서 선수들의 몸값은 4년간 100억원을 호가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류현진(LA 다저스), 강정호(피츠버그), 오승환(세인트루이스), 김현수(볼티모어) 등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에도 맹활약을 펼쳐 “KBO리그 최고의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2006년 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등 한국야구는 국제대회에서도 성과를 내며 경쟁력을 발휘했다.

분명 한국야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와 비교하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 속에 거품이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야구는 아직 취약한 부분이 많다. 성공으로 가는 다리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사상누각’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부실의 징후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KBO리그는 지난해 3할타자만 무려 40명을 배출했다. 타자들의 힘과 타격 기술의 발달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숫자의 이면에 불편한 함정이 숨어 있다.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가 56명인데, 3할타자가 40명이라는 것은 거꾸로 보면 투수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투수가 약하기 때문에 타자들이 만들어내는 숫자는 믿을 게 못되는 수준이다. KBO리그가 기형적인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KBO리그에서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타자들이 이번 WBC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전에서 총 19이닝 동안 1점밖에 못 뽑았다. FA 시장에서 타자는 화려한 숫자를 통해 몸값이 치솟고, 투수는 그만큼 희소성으로 인해 몸값이 솟구친다.

한국야구는 여전히 기반이 약하다. 특급선수 몇 명이 빠지면 전력이 급강하한다. 류현진 김현수 등 그동안 대표팀을 지탱하던 해외파 주축선수 몇몇이 빠지자 대표팀의 전력은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WBC는 한국야구에 실패를 안겨줬지만, 냉정하게 현주소를 되돌아볼 기회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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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가대표란 무엇인가?

여기에 국가대표를 바라보는 시선도 과거와는 다르다. ‘언제까지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하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맞는 말일 수 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태극마크를 다는 일을 ‘자부심’이 아닌 ‘희생’으로 본다면 대표팀은 구성 단계부터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는 고스란히 대회까지 이어진다.

물론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 중에 “WBC가 사이영상을 주느냐”고 말하는 선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단연 세계 최강의 선수들이 포진한 미국이지만 지금까지 4강이 최고의 성적으로 남아 있다. 2013년 대회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의 페르난도 로드니는 구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WBC 참가를 결정하면서 “조국을 대표하는데 구단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팀이 결국 이기고, 승리하는 법이다.

네덜란드 안드렐톤 시몬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네덜란드 안드렐톤 시몬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만 해도 그렇다. 안드렐톤 시몬스(LA 에인절스), 주릭슨 프로파르(텍사스), 잰더 보가츠(보스턴), 디디 그레고리우스(뉴욕 양키스) 등 메이저리그 스타들은 스프링캠프가 한창인 현 시점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고척돔까지 날아와 경기를 했다. 시몬스는 “국가대표는 특별하다. 매 순간 즐겁게 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네덜란드는 지난 대회 4강 돌풍에 이어 이번 대회에도 다크호스로 평가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엔트리 28명 중 미국 출신이 27명이나 된다. 그러나 조국에 대한 유대감이 남다르다. 아이크 데이비스는 “몇몇 선수가 이번 대회 전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면서 “이번 WBC를 통해서 이스라엘에서 야구가 시작될 수 있다”고 조국에 대한 마음가짐을 전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국가대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들을 보면 반드시 한국이 국가대표에 대해 가장 강한 응집력을 이끌어내는 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대표팀 차출을 귀찮아하거나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선수가 많은 팀, 패배가 눈앞에 있는데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웃고 있는 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런 마음가짐과 분위기라면 어쩌면 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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