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인장 찍힌 해남 윤씨 족보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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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가 은거했던 보길도서 발견… 후손 집서 고문헌 10점과 함께 수집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고산 윤선도 후손 집안에서 새로 확인된 해남 윤씨 초간보. 오른쪽 아래 윤두서의 소장인이 찍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고산 윤선도 후손 집안에서 새로 확인된 해남 윤씨 초간보. 오른쪽 아래 윤두서의 소장인이 찍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인장이 찍힌 해남 윤씨 집안의 초간보(初刊譜·처음 간행된 족보)가 확인됐다.

박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 선임연구원은 “보길도(전남 완도군 보길면)의 고산 윤선도(1587∼1671) 후손 집안에서 초간보를 포함한 고문헌 11점을 최근 수집했다”고 7일 밝혔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이 족보는 1702년 간행됐으며 남녀 구분 없이 출생 순서대로 후손을 적고, 딸의 후손도 이름을 적는 초기 족보들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해남 윤씨 초간보는 몇 개가 더 있지만 윤두서의 소장인이 찍힌 건 이것이 유일하다.

원림(園林)으로 유명한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병자호란 당시 항복 소식을 접하고 제주도에 가던 도중 은거한 곳이다.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경주 설씨인 작은부인을 뒀고, 그 후손들이 대대손손 살아왔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지은 낙서재(樂書齋)의 고도서는 일제강점기 상당수가 흩어졌고, 남아 있는 것을 이번에 수집한 것이다.

박 연구원은 “종가인 녹우당(綠雨堂)이 아니라 보길도에서 발견된 점이 매우 흥미롭다”며 “보길도의 해남 윤씨 후손들은 서파(庶派)로서 설움도 있었겠지만 족보를 300년 이상 소중하게 간직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족보는 윤두서가 보길도에 머무르며 보려고 가져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윤선도의 시문집인 고산유고(孤山遺稿)의 필사본과 윤선도가 봤을 것으로 보이는 정개청(1529∼1590)의 우득록(愚得綠)도 발견됐다. 발견된 고산유고는 별집으로 연작 시조인 산중신곡(山中新曲)이 담겨 있다. 정갈한 한글로 쓰였으며 1791년 이후 간행된 것을 후손이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우득록은 호남 사림의 맥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서인이 남인을 공격하는 데 근거로 사용됐던 저술이다. 박 연구원은 “남인이었던 윤선도는 서인에 맞서 왕권 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 년의 유배 생활을 했다”며 “윤선도가 보길도에 두고 봤던 책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묘지 관련 송사 자료 등 고문서도 여러 점 기탁됐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공재 윤두서#윤씨 초간보#윤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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