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느닷없는 봄 햇살 여기, 빛이 있으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2017년 3월 7일 화요일 맑음. 빛이 있으라!
#241 The Verve ‘Bitter Sweet Symphony’(1997년)

어느 날 느닷없이 봄 햇살이 세상에 들이닥친다.

침공.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럽다. 마치 공연 중간 객석에 켜진 조명처럼.

‘잠깐만요. 잠시만. 열정적인 관객들 얼굴을 보고 싶어서요. 객석에 불 좀 환하게 켜주실 수 있나요?’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가수는 즉석 주문을 하고 이윽고 ‘빛이 있으라!’는 신의 명령처럼 공연장 전체가 밝아진다. 그럼 뭔가 들킨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지구의 관객들은 부신 눈을 두 손으로 비비적대는 것이다.

액션! 문득 스스로가 사실은 주인공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무슨 애드리브 연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에 사로잡히는 그 이상한 찰나에 겨우내 웅크린 마음의 새순이 일어선다.

이맘때면 괜스레 가본 적도 없는 영국 런던 근교 리치먼드 공원 같은 데 가보고 싶다. 허세. 거기 가면 왠지 영국 밴드 ‘버브’ 멤버들이 푸른 잔디밭에 20년째 앉아있을 것 같아서다. 명작 ‘Urban Hymns’(1997년) 표지(사진)처럼. 그럼 악수 한 번씩 나누고 맥주든 와인이든 한 잔씩 권하고 싶으니까.

음반의 첫 곡은 ‘Bitter Sweet Symphony’다. 역설.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힘찬 현악 반복악절 덕에 노래는 아직 싱그럽다. 햇살처럼 페이드인. 비추어 들어오는 현악 사이로 마침내 드럼 비트가 뛰어들어 지구의 심장 박동처럼 진군한다. 희망적인 분위기와 별개로 평생 돈의 노예로 살다 문득 죽어버리는 허망한 인생. 달고 쓴 심포니라나. 이건 전기기타의 굉음도, 절규도 없는 1990년대의 마지막 ‘Creep’. 뮤직비디오 속에서 보컬 리처드 애슈크로프트가 부딪는 인파에 아랑곳 않는다. 쭉 뻗은 런던의 거리를 걷는다.

‘트레인스포팅’(1996년)과 ‘OK Computer’(1997년·라디오헤드)로부터 20년. 내 연기 생활은 안녕한지. ‘더 건강하고 행복하며 생산적일 것. 마음을 편하게 먹고.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않으며. 주 3회 헬스장에….’(‘Fitter Happier’) ‘난 기도 같은 건 안 하는 사람인데. 오늘밤엔 무릎을….’(‘Bitter Sweet Symphony’) ‘삶을 택하라. 직업을 택하라. 커리어를 택하라. ×나 큰 TV와 세탁기, 자동차, CD플레이어를….’(‘트레인스포팅’)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the verve#bitter sweet symphony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