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위협에… 군견까지 동원 ‘바리케이드 회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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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열풍’ 네덜란드 총선 현장을 가다] <상> 특수여단 경호 받는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

네덜란드 극우 정당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5일 암스테르담의 한 도로에서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빌더르스는 인터뷰 내내 팔짱을 풀지 않았다. 경찰은 인터뷰가 진행된 한 시간 동안 이 도로 전체를 통제했다.암스테르담=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네덜란드 극우 정당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5일 암스테르담의 한 도로에서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빌더르스는 인터뷰 내내 팔짱을 풀지 않았다. 경찰은 인터뷰가 진행된 한 시간 동안 이 도로 전체를 통제했다.암스테르담=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보안 검사 받기 싫은 언론인들은 그냥 돌아가세요.”

5일(현지 시간) 오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경찰들이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자유당(PVV)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54)의 인터뷰에 참석할 기자들을 바리케이드 안으로 몰아넣으면서 소리쳤다.

전날 PVV로부터 “보안 절차가 복잡하니 30분 일찍 오라”는 메일을 받고 현장에 40분 전에 도착했다. 한 외신이 “기이한(odd) 회견”으로 표현할 정도로 내외신 기자회견 장소부터 남달랐다. 산업 시설로 둘러싸인 인적이 드문 한 도로였다. 도로 전체를 경찰이 막고 있었다.

경찰은 폭발물 탐지견을 데리고 와 대기 공간에 있는 모든 기자의 가방을 10분간 검사했다. 한 네덜란드 기자가 “정말 웃기는 장면 아니냐”며 “사진 찍어서 한국에서 보도 좀 하라”고 했다. 경찰은 “빌더르스는 특별한 경호를 받는다. 야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도 경호가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빌더르스는 유럽 극우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독종’으로 꼽힌다.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 폐쇄, 꾸란 금지, 부르카 착용 금지가 총선 공약이다. 총선에 돌입하며 내뱉은 일성으로 “쓰레기(scum) 모로코인을 네덜란드에서 치우겠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2004년 헤이그 빌딩에서 그를 살해하려던 2명의 용의자가 수류탄 3개를 갖고 1시간 동안 대치하다가 잡힌 사건 이후부터 사복경찰이 늘 그를 따라다닌다. 방탄 지붕과 대피 공간이 있는 집에서 살고 의회 내에서도 다른 의원과 별도로 방을 쓴다.

빌더르스의 경호 임무를 맡았던 경찰관 한 명이 최근 자신의 신상 정보를 모로코 범죄 집단에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자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지난달 23일 공개 활동을 중단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유세 재개 뒤 첫 공식 행사였다. 한 네덜란드 일간지는 이번 유세 중단 이후 빌더르스를 군 특수경호여단(BSB)팀이 경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의 이목은 15일로 예정된 네덜란드 총선에 집중돼 있다. 4월 프랑스 대선, 9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유럽에 퍼진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파괴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150석 중 12석을 갖고 있는 PVV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25석 안팎의 의석을 얻을 것으로 보여 여당인 중도우파 성향의 자유민주당(VVD)과 1, 2위를 다투고 있다.

5일 빌더르스 대표를 인터뷰하기 전 경찰들이 기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있다. 경찰은 재킷 주머니에까지 손을 넣어 확인했다. 폭발물 탐지견의 가방 검사도 실시했다. 암스테르담=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5일 빌더르스 대표를 인터뷰하기 전 경찰들이 기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있다. 경찰은 재킷 주머니에까지 손을 넣어 확인했다. 폭발물 탐지견의 가방 검사도 실시했다. 암스테르담=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이날 회견에도 전 세계 기자 70여 명이 몰려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의 포퓰리즘 기세가 올해도 이어질지 촉각을 세웠다.

11시 정각, 경호차 3대가 호위한 가운데 빌더르스가 나타났다. ‘모차르트’라는 별명답게 특유의 탈색 머리가 눈길을 끌었다.

그에게 기자들의 거친 질문이 쏟아졌다.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racist)인가?”

그는 “법을 만드는 사람인 내 역할은 헌법을 지키는 것”이라며 “이슬람은 여자, 기자, 동성애자들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자유를 보장한 네덜란드 헌법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극우로 불리지만 동성 결혼에는 찬성한다. 꾸란에 대해서는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보다 더 반유대주의적(anti-Semitism)”이라고 비판했다.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트럼프는 트럼프고 나는 나”라면서도 “지난 대선 때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겨서 매우 기뻤다. 미국은 법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치켜세웠다.

EU 탈퇴를 주장하는 그에게 ‘브렉시트’의 의미를 묻자 “훌륭하다(fantastic)”며 “우리도 따라가고 싶은 길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EU를 떠나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폭탄 발언은 이어졌다. 그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4월 권력구조를 대통령제로 바꾸고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는 국민투표를 위해 터키 국민이 많은 독일과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 와서 유세를 하겠다는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에르도안은 이슬람 파시스트”라며 “나는 그들 내각 전체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 인물)로 부를 것이며 총리가 되는 순간 모든 터키 공무원의 입국을 막겠다”고 말했다.

빌더르스가 인기를 끌면서 다른 정당도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달 3일에는 기독민주당(CDA)이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 모든 초등학교에서 국가를 배워 부르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PVV의 지지율은 최근 하락세다. 3일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 한 캠프 관계자는 “빌더르스가 유세를 중단한 이후 벌어진 일”이라고 진단했다. 빌더르스는 “최근 모든 네덜란드 정당이 국가 정체성, 이민 문제를 이슈화하며 나를 따라해 격차가 좁아졌지만 진품은 언제나 복제품보다 낫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그가 한 시간 동안 모든 기자의 질문에 상세하게 답하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아직도 모로코인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느냐” 등의 날 선 질문이 서너 번 반복됐지만 그때마다 싫은 기색 없이 설명하는 모습에 노회한 정치인의 면모도 보였다.

암스테르담=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네덜란드#총선현장#테러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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