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글로벌 인사이더]‘핫’한 한국 선거, ‘쿨’한 미국 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6일 10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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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온다면 한국은 조기 대선 열풍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한국의 선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마치 아이돌이 등장하는 화려한 쇼 같다. 백댄서 같은 지지자들의 요란한 사전 공연이 끝나면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몰고 다니는 후보가 등장해 화려한 말솜씨로 관중을 압도한다. 아이돌의 불안한 노래 실력이 그러하듯 화려한 수사로 포장된 공약은 뭔가 부실해보이고 터무니없기까지 하지만 별로 상관없다. 한국 선거에서는 인물이 중요하지 후보의 철학과 정책 비전은 그 다음이다.

미국 워싱턴 특파원을 하면서 한번의 대선과 2,3 차례의 지방선거를 경험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미국의 선거는 참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국가의 최고 리더를 뽑는 대통령 선거가 약간 흥행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스펙터클한 대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카지노가 최대 관심사예요.”

2012년 대선 때 인근 메릴랜드 주에 사는 친구에게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난데없이 카지노 얘기를 들고 나왔다. 그는 “대선 후보보다 주민투표의 최대 이슈인 카지노 개설 문제를 놓고 메릴랜드가 시끌시끌하다”고 했다. 당시 기자가 사는 곳에서도 TV 선거광고의 대부분은 이 카지노 이슈를 다루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 미국 대선은 대통령은 물론 연방의회 상하원 의원도 함께 뽑는다. 이와 함께 주민투표도 진행된다. 주민투표는 각 지역의 핵심 이슈에 대해 주민들이 찬반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다. 2012년 대선 때는 38개 주에서 176개 이슈에 대해 주민투표가 이뤄졌다. 주민투표는 ‘제안(Proposition) 1’ ‘질의(Question) 2’ 등의 이름으로 선거에 부쳐진다. 주민투표는 대선은 물론 중간선거, 지방선거 때도 함께 진행되고, 특정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단독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카지노 개설, 동성애자 화장실 혼용, 채권 발행 등 가벼운(?) 이슈에서부터 마리화나 합법화, 최저임금 인상, 사형제 폐지 등 언제나 논란을 몰고 다니는 이슈까지 모두 투표 대상이다. 당시 메릴랜드에서는 카지노 이슈가 ‘질의 7’로 통했다.

구체적으로 당시 메릴랜드에서는 5개가 있는 카지노를 1개 더 개설하느냐, 슬롯머신과 함께 룰렛, 블랙잭 등으로 도박 종류를 확대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메릴랜드에서는 카지노 문제를 놓고 수많은 공청회가 열렸다. 카지노가 핵심 이슈가 된 것은 교육문제와 연계되면서부터였다. 카지노로 인해 세수가 늘어나면 교육에 투자될 것이라는 찬성파와 카지노가 오히려 교육에 악영향만 미칠 것이라는 반대파가 팽팽히 맞서면서 당시 ‘질의 7’은 메릴랜드뿐 아니라 비슷한 카지노 문제를 안고 있는 인근 주들에서도 대선의 최대 관심사였다.

미국 대선 과정을 취재하면서 느낀 건 국민이 선거를 바라보는 관점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국민은 정책과 이슈 중심으로, 지역적 관점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경향이 높다. 대선과 함께 지역의 핵심 사안을 다루는 주민투표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이슈를 공부해서 투표장에 가고 어느 후보가 내가 사는 지역을 더 발전시킬지 고민해서 한 표를 던진다. 후보 개인의 인물 평가와 과거 행적 공방, 거대 비전에 치중하는 한국 대선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한국 대선이 인물 중심적, 중앙 집권적이라면 미국 대선은 이슈 중심적, 지방 분권적으로 진행된다. 또 한국 대선이 과거 지향적이라면 미국 대선은 현재 또는 미래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상호 비방과 음모론 등이 난무하는 흥미진진한 한국 선거판을 보다가 미국 대선을 보면 무미건조하고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 중의 선거’로 통하는 미국 대선 현장을 살펴본 관전평은 우리보다 훨씬 내실 있고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 역사와 선거 문화가 다른 한국과 미국의 대선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선거 시스템은 과열선거, 금권선거 등의 오명을 벗기 힘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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