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도청 지시” 트럼프 뜬금없는 공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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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때 도청 사실 방금 알았다”… 개인 리조트서 새벽 트윗 4건
‘워터게이트’ 언급하며 거친 비난
오바마측 “어떤 사찰도 안해” 반격… 일각 “트럼프의 러 커넥션 물타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직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도청을 지시했다고 돌연 주장해 미 정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오바마는 대변인을 통해 “사찰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즉각 반박했다. 트럼프 취임 두 달도 안 돼 전현직 대통령이 도청 공방을 벌이는 초유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4일 자신 소유의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새벽부터 잇따라 4건의 트윗을 날리며 오바마의 도청 의혹을 제기했다. 트럼프는 “끔찍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선) 승리 직전 (내 선거 사무실이 있는) 트럼프타워에서 전화를 도청했다는 걸 방금 알았다. 이건 매카시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앞서 대선후보를 도청하는 것이 합법인가. 새로운 저급함(new low)”이라고 오바마를 힐난하더니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선거 직전인 지난해 10월 내 전화를 도청했다는 사실을 좋은 변호사가 제대로 입증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아니냐. (오바마는) 나쁜(혹은 역겨운) 사람!”이라고 썼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자신을 상대로 ‘제2의 워터게이트’를 자행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도청 의혹을 입증할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매카시즘’ ‘워터게이트’ ‘저급하다’ ‘역겨운 사람’ 등 막말 공격을 받은 오바마는 케빈 루이스 대변인을 통해 즉각 반박했다. 루이스 대변인은 성명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어떤 관리도 법무부의 수사에 관여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어떤 미국인에 대한 사찰도 명령하지 않았다. 그와 다른 어떤 주장도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의 핵심 측근인 벤 로즈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도 이날 트위터에서 트럼프를 겨냥해 “어떤 대통령도 도청을 명령할 수 없다. (트럼프) 당신과 같은 사람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한 제약이 가해졌다”고 쏘아붙였다.

트럼프가 도청 의혹을 제기한 것은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최측근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여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물타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실제로 도청 의혹을 제기하는 도중 다른 트윗에서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대사를 암시하며 “세션스 장관이 만난 인물과 동일한 러시아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 당시 백악관을 22차례 방문했으며, 지난해에만 4차례 백악관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는 이날 “‘물타기 대장(Deflector-in-chief)’이 또다시 그렇게 하고 있다. 독립적인 위원회의 조사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러시아 내통 스캔들을 덮기 위해 ‘오바마 도청 지시설’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의혹 제기에 미 언론은 벌집을 쑤신 듯 보도 경쟁에 나섰다. CNN 등 트럼프에 비판적인 매체들은 “트럼프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baseless) 오바마의 도청을 주장했다”고 전했다. 반면 폭스뉴스 등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매체는 “정말 뭐가 있는 것이냐”며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정계복귀설이 흘러나오는 오바마와 정보기관에 남아 있는 오바마 인맥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라는 관측도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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