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GDP 1% 방위비’ 40년 원칙 폐기… 군사대국화 질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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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아베, 트럼프 압박-北도발 빌미 ‘적기지 공격능력 확보’도 가시화
지상 이지스시스템-사드 배치등 검토… 주변국 순시선 제공 안보협력 강화
대학 군사기술 지원 2년새 37배로

#장면1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효율적으로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확보할 생각”이라며 “일본의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 이내로 억제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방위비 GDP 1% 미만’ 원칙은 1976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총리가 정한 것으로 40년 넘게 지켜져 왔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맹국 추가 부담’ 요구를 명분으로 내세워 평화국가 이미지 정착에 기여해 온 이 원칙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날 아베 총리가 무너뜨릴 수 있다고 밝힌 원칙은 하나 더 있다. 아베 총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검토를 해야 한다”며 공격을 받기 전 적국의 기지를 먼저 공격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 확보’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장면2
4일 히로시마(廣島) 현의 한 항구에선 선체에 ‘말레이시아 코스트 가드(Malaysia Coast Guard)’라고 표시된 길이 90m의 순시선이 말레이시아로 출발했다. 일본이 제공하기로 약속한 대형 순시선 2척 중 하나다. 아사히신문은 “해상보안청 선박이 외국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일본은 말레이시아 외에도 베트남에 13척, 필리핀에 12척의 순시선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
아베 내각이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전방위적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북한의 연이은 도발, 중국의 해양 진출 등 외부 요인을 핑계로 숙원이던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에 성큼 다가가는 모습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적기지 공격 능력 확보에 대해 ‘헌법상 인정되지만 보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켜 온 ‘전수방위(오직 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점점 커지면서 불확실한 요격 대신 직접 공격에 나서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적기지 공격 방법으로는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나 F-35 전투기가 거론된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최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적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하면 적국 지도자가 ‘자신도 노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재국에 효과적인 카드”라고 전했다.

미사일 요격능력 강화를 위해선 지상 배치형 이지스 시스템 ‘이지스 어쇼어’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검토 중이다. 모두 미국의 록히드마틴이 만든 것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바이 아메리칸’에도 부합한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가 있는 동중국해에선 대(對)중 억지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부터 탐지 능력을 높인 신형 잠수함 개발에 착수하고, 사거리 300km인 신형 지대함 미사일을 2023년까지 각 섬에 배치할 계획이다. 올해 예산에서 해상보안청 예산을 사상 최대(2106억 엔·약 2조1000억 원)로 늘렸다.

남중국해 연안국에는 일명 ‘순시선 외교’로 접근 중이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에 일본의 중고 순시선 제공을 약속했고 인도네시아에는 남중국해 순찰 시 협력을 다짐했다. 중국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게는 지난해 9월 아베 총리가 직접 만나 중고 훈련기 TC-90 5기 제공을 약속했다. 본격적 안보 협력을 위해 자위대 중고 무기를 외국에 무상으로 양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우려에 대해 대외적으로 ‘세계의 평화·안정·번영에 기여하겠다’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남수단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부대의 무기 사용 권한을 대폭 확대한 것도 그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다국적 훈련에도 자위대가 열심히 참가하고 있다.

대학과의 군사기술 공동 연구를 강화하는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군사기술 연구 위탁 예산은 첫해인 2015년 3억 엔에서 올해 110억 엔으로 대폭 올랐다. 과거 침략전쟁을 지원했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군사연구는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던 학계에서는 이 원칙을 지킬지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아베 총리가 지향하는 ‘보통국가’가 되려면 방위비를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 하지만 국가부채가 GDP 대비 250%에 육박하는데 방위비를 크게 늘리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이 때문에 아베 정권은 지금까지 매년 추경에 방위비를 끼워 넣는 편법으로 사실상 ‘방위비 GDP 1% 미만’ 원칙을 무력화해 왔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이젠 대놓고 이 원칙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지향하는 군사강국의 미래상은 내년 하반기 발표될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서 알 수 있다.

여기에는 향후 5년간의 방위비 규모, 도입 무기와 전략 등이 포함된다. 이때 10개년 방위계획인 방위대강(2014∼2023년)을 도중에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기계획에 들어갈 방위비의 규모, 적기지 공격능력 명시 여부 등에 따라 일본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군사강국으로 한 단계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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