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당나라와 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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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독자로서는 의아하겠지만 중국의 당(唐)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전의 미국은 많은 면에서 닮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나라를 꼽으라면 당나라일 것이다. 618년에 건국한 당은 지금의 중국을 넘어설 정도의 위세를 전 세계에 떨치던 나라였다. 당시 세계 5대 도시 안에 시안(西安)과 양저우(揚州) 두 곳이 포함될 정도였다. 경제사학자들은 당시 당나라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40%를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나라 번성의 1등 공신은 개방과 포용성이었다. 외국과의 상품 교역과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문화 교류도 왕성해 문학과 예술이 번성했다. 당시 수도 시안은 인구 100만 명을 웃도는 국제 도시였다. 눈이 푸른 외국인도 많았다. 외국 유학생과 기술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빈공과라는 과거를 실시해 외국인도 관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신라 최치원이 빈공과에 합격해 당에서 관리 생활을 했다. 흑인이 살았다는 기록과 출토물도 있다고 한다. 불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 받아들였다. 시안에는 이슬람 사원인 청진사가 아직 남아 있다.

개방과 포용성 면에서는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이 중심이 돼 추구한 세계화는 지난 30여 년간 세계 경제의 키워드였다. 세계화는 개방과 포용성을 현대식으로 포장한 또 다른 표현이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으며,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미국인들은 싼값으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세계의 우수한 인력은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미국 기업에서 직업을 구했다. 미국은 전 세계의 뛰어난 인력을 활용해서 세계적인 기술과 기업을 일궈낼 수 있었다. 개방과 포용성으로 당나라가 번성기를 누렸다면 미국은 세계화를 기치로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랬던 미국이 방향을 틀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다른 나라를 연일 강타하고 있다. 반이민 행정명령,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간 인적, 물적 교역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근린궁핍화 정책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눈앞의 이익처럼 보이는 것에 취해 세계의 흐름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트럼프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빈곤 백인층을 겨냥해 미국인이 멕시코, 중국 등에 직업을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이를 되찾아 올 거라고 약속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동안 미국이 세계화로 취한 이득은 못 본 체하고 문제만 들춰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미국에도 마이너스가 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고 트럼프를 지나친 포퓰리즘에 몰두한다고 탓할 수도 없다. 요즘 반기업적 공약과 법안을 내놓는 것을 보면 포퓰리즘에서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의 정책으로 거지로 전락하는 상황을 순순히 수용할 나라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보복과 제재라는 악순환이 필연적이다. 1930년대 미국이 취했던 보호무역 조치가 전 세계가 대공황을 겪은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참담한 역사는 그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사회에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난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도 미국이 가해 올 압박을 예측하고 민관이 함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당나라#트럼프#중국#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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