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협동 사냥… 왕따… 물고기의 놀라운 사생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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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없는 물고기는 고통 모른다’ 편견 반박… 통증 느끼고 사회성도 인간 못지않게 발달 “생물의 도덕적 지위, 지능 아닌 의식에 달려”

◇물고기는 알고 있다/조너선 밸컴 지음·양병찬 옮김/380쪽·2만 원·에이도스

나는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다. 요즘 같은 애완견 전성시대에 돌팔매질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개고기 대신 물고기로 단어를 바꾸면 적어도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상당수 채식주의자들조차 물고기는 먹으니 말이다. 전기 충격으로 물고기를 잡아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상태에서 회를 쳐도 일반인들은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 저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물고기도 개처럼 학대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고기 먹는 자로서 나는 저자의 주제의식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놓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예로 든 수많은 일화와 과학 실험 데이터를 접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모든 생물의 존엄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달라이 라마의 추천사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저자는 물고기도 사람이나 개와 같은 포유류처럼 인지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회를 칠 때 물고기의 아픈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 통증을 느낀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일부 동물학자들은 대뇌를 구성하는 부위로 통증을 인지하는 신피질이 어류에 없다는 점을 들어 물고기는 아픔을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류에 대한 통증실험은 신피질 없이도 통증 인지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예컨대 벌독이나 식초, 바늘로 통증을 유발한 물고기의 아가미 개폐 횟수는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정도가 높을수록 아가미를 열고 닫는 횟수가 늘어난다. 미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물고기가 갈고리를 피하는 현상도 잉어의 경우 최대 3년이나 지속된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있다.

군집을 이뤄 소통하는 사회성에서도 물고기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뛰어넘는다. 무리를 지어 역할을 분담하고 먹잇감을 모는 ‘협동 사냥’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탁 트인 바다에서 민첩하게 헤엄치는 그루퍼는 곰치와 함께 협동 사냥을 벌인다는 사실이 2006년 밝혀졌다. 산호초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먹이를 쫓는데 곰치가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레오파드코랄 그루퍼는 목표물의 위치를 파트너에게 알려주기 위해 물구나무까지 선다.

‘왕따’ 비슷한 것도 물고기들 사이에서 이뤄진다. 구피 수컷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곤 하는데 일단 싸움에서 진 쪽은 구경꾼 수컷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걸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 닮은 행태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생물의 도덕적 지위는 지능이 아닌 의식 내지 인지능력에 달렸다고 말한다. 정신지체나 정신이상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고기도 개나 고양이처럼 동물보호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할지는 독자들의 몫이지만, 적어도 물고기에 대한 여러 편견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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