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정신 영원히 새기자” 본보, 1965년 기념비 건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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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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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 15일 전북 이리(현 익산)에서 열린 제1호 ‘3·1운동 기념비’ 제막식을 전한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DB
1971년 8월 15일 전북 이리(현 익산)에서 열린 제1호 ‘3·1운동 기념비’ 제막식을 전한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DB
“기미 3·1운동은 우리 민족정기를 민중의 토대 위에 꽃피게 한 장엄한 역사의 한 페이지였습니다. 본사에서는 전국적으로 3·1유적보존운동을 일으켜 3·1정신을 영원히 우리 민중의 가슴속에 새겨두고자 합니다. 이 운동은 남녀노소, 전국의 모든 애국동포의 협력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아일보가 창간 45주년을 맞은 1965년 4월 1일자 1면 사고(社告)다. 동아일보는 1932년부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적보존운동을 벌이는 등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사업을 일제강점기부터 계속해왔고, 3·1운동 기념비 설립 사업도 그 연장이었다. 또한 3·1운동의 결과물로 생겨난 동아일보이므로 이 같은 사업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동아일보는 사고를 낸 뒤 기념비 건립을 위한 유적지 조사를 국사편찬위원회와 합동으로 추진했다. 기념비 건립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견해에 따라 기념비건립위원회도 구성했다.

연구와 현지답사 등을 거쳐 첫 결실로 1971년 8월 15일 전북 이리(현 익산시) 역전광장에 3·1운동 기념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열었다. 이리에서는 1919년 4월 4일 정오 수천 명의 군중이 장터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시위에 들어가려 하자 일본군이 발포해 88명이 그 자리에서 순국하고 5명은 체포돼 총살당했다. 비문은 이희승이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썼고, 조각은 김영중이 맡았다. 비용 130만 원 중 50만 원은 동아일보가 냈고, 나머지는 이 지역 유지들이 모금했다.

1970년대에는 충북 영동, 강원 횡성, 전북 남원 등 전국 9개 지역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1980년대에도 설립 사업은 계속 추진됐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3·1운동#기념비 건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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