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자살세트’ 팔고사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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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자처 자살브로커 구속
SNS에 ‘100% 확실’ 광고 내고… 질소가스통-타이머 등 묶어 팔아
펜션 장기임차 동반자살자 모집… 찾아온 20대 여성 강제추행도

자살 브로커 송모 씨가 인천에 사는 38세 여성 집에 설치한 질소가스통. 송 씨는 100만 원을 받고 가스호스, 가스조절기, 신경안정제 등을 담은 자살세트를 만들어 팔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자살 브로커 송모 씨가 인천에 사는 38세 여성 집에 설치한 질소가스통. 송 씨는 100만 원을 받고 가스호스, 가스조절기, 신경안정제 등을 담은 자살세트를 만들어 팔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고통 없이 죽는 법, 100% 확실한 자살.’

지난해 11월 ‘자살 브로커’ 송모 씨(55)는 트위터 아이디 ‘편안한 동행’으로 이 같은 광고 문구를 띄웠다. 그는 장기 임차한 충남 태안의 펜션에 질소가스통, 타이머, 가스호스, 신경안정제 등 일명 ‘자살세트’를 구비하고 동반 자살자를 모집했다. 원가 50만 원의 자살세트를 100만 원에 팔았다. 자살을 택했지만 죽음이 두렵거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이 송 씨의 주된 ‘고객’이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살로 내몰린 딱한 처지의 사람도 많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자살 브로커는 돈벌이가 됐다. 송 씨는 스스로를 ‘저승사자’라 불렀다. 같은 달 그는 인천에 사는 38세 여성 집에 찾아가 자살세트를 설치해 줬다. 그리고 비닐로 텐트를 어떻게 감싸는지, 질소가스에 호스는 어떻게 연결하는지, 수면제는 어느 정도 먹고 타이머는 몇 시간에 맞춰 놓는지 등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법’을 소상하게 알려줬다.

그해 12월에는 충남 홍성군에 사는 50대 남성 집에 자살세트를 설치해 주고, 자살을 도와주겠다며 펜션으로 20, 30대 여성 2명을 부르기도 했다. 다행히 지인의 112 신고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송 씨도 한때 자살을 시도했다. 운영하던 도매업이 망하자 지난해 7월 차량 안에 연탄을 피워 놓고 수면제를 먹었지만 실패했다. 이후 질소가스를 이용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자살 방법을 연구했다. 햄스터로 실험까지 마쳤다.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장기간 일하며 죽음을 가까이 한 경험도 자살 방법을 연구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송 씨가 돈 문제로 자살을 택했다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자살 브로커로 변신했다”고 전했다.

동반 자살 희망자 중엔 20, 30대 젊은 여성이 많았다. 송 씨는 극한 상황에 놓인 여성의 심리를 악용해 성적인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펜션으로 찾아온 22세 여성을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며 강제추행한 것. 죽음이 코앞이니 성관계쯤이야 대수롭지 않으냐는 식이었다. 동반 자살 모임에서 만난 여성과는 잠시 동거하기도 했다. 송 씨의 피해자들은 “여성에게 유독 집착하고 접근했다”고 전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자살방조 미수, 무허가 고압가스 판매 등의 혐의로 송 씨를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또 송 씨와 함께 자살 브로커로 활동한 이모 씨(38)도 자살방조 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동반 자살 모임에서 송 씨를 알게 된 이 씨 역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이 있었다.

송 씨는 “돈을 받고 사람을 살리려 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과 자주 연락한 50여 명 중 3명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자살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자살을 돕거나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인터넷 게시글 대부분이 사기나 성추행 목적으로 올린 글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자살자 수는 2011년 1만5906명에서 2015년 1만3513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가스 중독에 의한 자살은 1251명에서 2207명으로 늘었다. 인터넷에선 질소가스를 판매한다는 글이 버젓이 올라오고 택배로 집까지 배달해 준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신규진 기자
#자살#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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