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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연극인 열전]연출가 이성열 “스타일에 구속받지 않는 게 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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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연극인 열전]연출가 이성열 “스타일에 구속받지 않는 게 내 스타일”

심규선기자 입력 2017-03-03 09:42수정 2017-04-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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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이성열의 특징은 언뜻 대립적인 두 연극 세계를 자유롭게 오간다는 것이다. 하나는 텍스트를 해체한 뒤 현실을 집어넣어 공동창작하는 실험적인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텍스트의 작가 정신과 언어를 존중하는 문학적인 세계이다. 그는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텍스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인간과 시간이 만나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 변화는 대체로 지향점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긴 인터뷰라도 시간대별 변화만 놓치지 않으면 기자가 망신당할 일은 없다, 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를 인터뷰하면서 기존의 상식이 흔들리는 불길한 예감을 했다. 이는 인터뷰 정리가 고단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와의 인터뷰를 전후해 이런 저런 자료를 읽다가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의 변화는 한 점을 지향하지 않고, 지그재그처럼 적어도 두 점 사이를 오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런 경향은 그저 당시의 분위기를 수용한 것도 있고, 본인의 의지를 실은 것도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부작위’와 ‘작위’라는 또 다른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누구인가. 연출가 이성열(55)이다. 2월 26일 오후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작품이 뜸한 것 같아서 댓바람에 “요즘 뭐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올 서울연극제 개막작(4월 28일)으로 ‘벚꽃동산’을 연습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 그의 연출 작품을 개막식으로 선정한 데는 필경 그의 능력과 수상경력, 극단의 수준도 고려됐을 것이다. 그는 연극판에서 꽤나 성공한 연출가다.


“우리 극단이 ‘벚꽃동산’을 대극장에서 올리는 것은 처음이다. 민간극단으로서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사실 요번의 ‘벚꽃동산’도 원작 그대로는 아니고, 해체를 해서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고민 끝에 대본에 충실하게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작품 전체를 ‘꿈’이라는 컨셉으로 해석해 볼 생각이다. 주인공 라네프스카야 부인이 ‘벚꽃동산’으로 상징되는 옛 시절을 그리워하듯, 이 작품을 통해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아련한 아픔과 불안감을 표현해 보고 싶다. 우리 시대의 ‘벚꽃동산’은 무엇일까. 우리 곁에서 지금 무엇이 사라져가고 있는 걸까. 이런 물음에 나름대로의 해법을 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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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벚꽃동산을 대본에 충실하게 연출하겠다”고 한 것은 의외다. 왜냐하면 그는 연극평론가 김소연 씨와의 인터뷰(2015년 5월) 등에서 이미 “벚꽃동산을 대극장 실험극으로 만들고 싶고, 기초적인 시도를 이미 ‘굿모닝 체홉2’에서 한 적이 있고, 사실적이 않은 장면들을 내가 무책임하게 집어넣은 것이 있는데 그냥 놔두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변화가 또 다른 실험인지, 아니면 연륜에 따른 자연스런 ‘색깔빼기’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해체’라는 말을 빼놓고는 그를 설명할 수 없기에 나는 그의 인터뷰를 ‘해체’해서 2항 대립 구도로 정리하기로 했다. 2항 대립이란 서로 다른 듯한 이성열의 지향을 대비시켜 보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대립’이라는 단어는 저널리즘에서 가볍게 쓰는 말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첫 번째 대립은 ‘해체하는 연극’과 ‘해체하지 않는 연극’이다. 그는 1996년에 ‘백수광부(白首狂夫)’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고대 시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서 술병을 들고 흰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물속으로 들어가 결국은 죽고 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극단 이름을 백수광부로 정한데 대해 “이 남자(백수광부)처럼 연극이라는 술에 취해 흥에 겨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가듯 소리 없이 사라지고자 합니다”라고 했다(2012년 극단 소개 책자, 대표의 글). 그의 나이 34살 때 만든 이름이니 문학적 순수성으로 포장한 젊은 객기가 엿보인다.

그는 극단을 만든 뒤 거의 5년간은 원작을 해체해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했다. 창단 공연 ‘햄버거에 대한 명상’(1996년)은 장정일의 시 18편을 해체해서 극화한 것이고, ‘굿모닝? 체홉’과 ‘놀랬지? 체홉’(이상 1998년)은 체호프의 4대 장막극(벚꽃동산, 갈매기, 세 자매, 바냐아저씨)을 해체해서 재조립한 것이고,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2000년)는 그의 소울 메이트였던 윤영선(2007년 작고)의 글을 해체해서 만든 것이다. 체호프의 작품을 해체한 데 대해 그는 “셰익스피어는 온갖 방식으로 다 올리는 데 왜 체호프는 꼭 사실적으로만 공연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해체’는 당시의 유행이기도 했지만, 본인의 의지도 작용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련의 체호프 작품에 대해 나중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그의 여러 인터뷰를 종합해 보면 그는 당시에 체호프를 많이 알았던 것도 아니어서, 나는 그와 체호프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났다고 본다. 그래서 실험적이긴 했으나 정제된 작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 작품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백수광부는 그런 작품을 하며 변신에 대한 욕구와 자신감을 키웠고, 결국 성취한다.
재일동포작가 유미리가 쓴 ‘그린 벤치’의 한 장면. 근친상간과 광기, 고독과 슬픔이 지배하는 극히 비현실적인 가족의 종말을 그린 작품으로 극단 백수광부의 정제된 레퍼토리 중에서는 첫 번째에 자리한다. 2005년 공연 당시 서울연극제에서 연출상, 연기상(사진 왼쪽의 예수정 씨) 등 5개 상을 받았고 올해의 예술상도 수상했다. 극단 백수광부 제공

극단 백수광부의 ‘해체하지 않는 연극’에서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그린 벤치’(유미리 작, 2005년)다.

“주류에 진입한 거죠. 마음먹고 주류에 들어간 거예요, 제가.…‘아, 이렇게 빙빙 떠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중심부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텍스트가 탄탄한 작품을 찾았던 것이고, 그리고 이 작품을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게 만들려고 캐스팅도 딱 극에 맞는 배우들을 찾게 된 것이었죠”(2012년 ‘극단 백수광부를 말하다’ 좌담집에서)

‘그린 벤치’는 그 해의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 연출상(이성열), 연기상(예수정), 신인연기상(이지하), 무대미술상(손호성) 등 5개상을 휩쓸었고,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상’까지 받았다. 상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그가, 극단 백수광부가,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크다(‘그린 벤치’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가족관계를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작가 유미리의 개인적 성장 환경에도 비중을 둬서 작품을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극단의 그런 능력은 뒤에 ‘여행’(윤영선 작, 2005년), ‘봄날’(이강백 작, 2009년)에서도 발휘되며, 좋은 평가와 성과를 거둔다.

두 번째 대립은 표현과 창작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는 ‘해체 여부’의 연장선, 아니면 그 하부 개념이지만 그의 연출관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는 해체 연극을 할 때는 ‘몸짓 언어’와 ‘공동창작’을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텍스트 기반의 연극을 할 때는 “작가를 존중하고 문학적 언어를 살리려고 애쓴다.”

“공동창작을 하면 문학적 향취나 미적 형식, 주제의 통일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작품, 좋은 텍스트가 갖고 있는 사상, 경험, 깊이 등은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공동창작은 공동체 전체의 테마와 감성 등을 여러 배우가 날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의 흡수력은 매우 빠르다.”

그의 연극이 ‘날 것’에서 ‘정제된 것’으로만 갔다면 정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은 그런데 이성열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날 것’의 계보를 잇는 ‘야메의사’(프란츠 카프카의 ‘시골의사’를 재창작한 연극)를 시리즈로 만들어 2006, 2009, 2010년에 틈틈이 공연했고, 지난해에도 공동창작한 ‘햄릿아비’로 제37회 서울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이성열), 연기상(이태형)을 받았다. ‘햄릿아비’는 정치색이 강해서 수상을 기대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 작품들 사이에 ‘뛰어난 텍스트를 밀도 있게 해석했다’는 ‘과부들’(아리엘 도르프만 작, 2012년)을 공연해 연극상 중 최고 권위인 제49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은 칠레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과부들.’ 1970년대 칠레 피노체트 독재정권 치하에서 실종과 고문 등의 폭력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의 저항을 사실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은유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극단 백수광부 제공

세 번째 대립은 앞서 언급한 ‘부작위’와 ‘작위’에 관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데 점점 더 유용한 잣대가 될 것 같다.

그는 분명 “연극을 통해 어떤 이념이나 주장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연극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고, 뭔가를 가져가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나는 그런 걸 존중한다”고 했다. 이해랑상 수상 인터뷰에서도 “연극은 세상의 거울이며, 있는 그대로의 삶이 보여주는 감동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연극이 특정 이데올로기와 손잡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의 ‘부작위’를 지지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쿨하다는 것이 예술의 기본인데, 요즘 들어서는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고도 했다. 그 결과물이 ‘야메의사’와 ‘햄릿아비’ 등이다.

기존의 텍스트를 해체하는 것을 즐겨하면서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해체를 하는 이유가 ‘현실’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 연출가나 배우들이 다양한 ‘현실’에서 ‘특정한 현실’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성열이 말하는 ‘있는 그대로의 삶’이란 이제 ‘쿨한 것’에서 ‘핫한 것’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그의 특성을 본인과 외부는 어떻게 평가할까. 특성이 확실한 탓인지 본인과 외부의 평가가 대체로 일치한다.

“모든 작품을 특정 스타일로 연출하는 분들이 계신데, 나는 텍스트에 따라 그것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스타일을 찾는다. 스타일이 통일돼 있지 않는 게 나름대로 특징인 것 같다. 크게 보아 문학적 텍스트에 기반해서 정밀한 무대 미학을 추구하는 쪽과 거칠고 해체적인 공동작업을 시도하는 쪽이 있다.…십 여 년 간 크게 이 두 가지를 시계추처럼 오갔다. 무대에 대한 몇 가지 서로 다른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작품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한국연극’ 2013년 5월호).

“이성열에게는 아직 자기만의 독특하고 화려하며 독자적인 연극 문법, 혹은 연극 언어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선택하는 레퍼토리들의 성격이나 연출 스타일도 다양하게 절충적이며 완성도도 들쑥날쑥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열은 어느새 대학로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감을 쌓아올리고 있다”(김방옥 연극평론가, 제23회 이해랑 연극상 팸플릿에서).

이성열은 본인 입으로도 “내 연출은 좋게 말해서 다양하고, 나쁘게 말하면 왔다리갔다리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흉이 될 게 없다. 고집도 세월이 흐르면 소신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양하든, 왔다갔다하든 그것만으로는 연극을 말할 순 없다. 작품을 만드는 방식도 연출가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말해야 한다.

그의 작품을 논할 때 등장하는 것이 ‘일상’이라는 말이다.

“극단을 만든 지 처음 10년간은 ‘일상’에 매달렸던 것 같다.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을 다뤘다. 극단을 만들던 90년대 중반은 민주화의 욕망이 해소되면서 우리 사회는 뭔가 미시적인 것, 개인적인 것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에 나도 들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뭔가 큰 문제가 해소된 것 같은데 왜 이리 헛헛하지, 정말로 살기 좋아진 건가 등등을 묻는 흐름이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것 같다.”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폭력성, 위태로움, 공포 등에 관심이 있었다. 그걸 제일 잘 표현한 사람은 레이몬드 카버다. 아주 일상적이지만 섬뜩하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도 그런 것이다. 카버의 소설은 일상이 전개되다가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섬뜩한 상황이 드러난다면, 내가 했던 초기작들은 일상의 표면 밑에 가려져 있던 것을 작품의 전면에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2015년 5월, 김소연 연극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말을 적용하면 개인에게 닥친 일그러진 일상을 표현한 것이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고, 공동체에 닥친 부조리와 왜곡에 천착한 것이 ‘야메의사’와 ‘햄릿아비’가 될 것 같다.
지난해 극단 백수광부가 창단20주년 기념으로 공동창작해 공연한 ‘햄릿아비’의 한 장면. 햄릿아비는 이 시대의 원혼들을 상징한다. 사진의 장면은 주인공이 위안부 소녀상 집회에 참석했다 비를 맞고 길 가 벤치에서 노숙하는 모습이다.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한 매우 정치적인 작품이지만 “계몽적 상투성이나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은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유감없이 드러낸 거친 연극이었다”는 평을 받으며 제37회 서울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연기상을 받았다. 서울연극협회 제공

그러나 ‘일상’이라는 키워드는 문학적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연극에는 적용이 어렵다. 문학적으로 깊이가 있는 텍스트는 이성열이 아니라 작가의 문법을 중시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때 등장하는 것이 ‘탄탄한 인문학적 기반’이라는 상찬이다.

“그런데 그가 동시대의 연출가들보다 높게 평가받은 가장 큰 이유는 인문학적 기반이 탄탄하여 우리 연극에서 미흡했던 존재 천착에 강했던 데 따른 것이다. 솔직히 우리 근현대극은 식민지, 분단, 이념갈등, 전쟁, 군사독재 등으로 점철된 격동의 현대사와 부대끼면서 인간탐구에 소홀함으로써 연극미학적 측면에서 뒤지는 면이 없지 않았다. 이성열이야말로 그런 취약점을 메워 갈 차세대 연출가라고 확신하여 우리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제23대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로 선정케 된 것이다”(제23회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 선정 이유, 시상식 팸플릿에서).

솔직히 말해 나로서는 ‘인문학적 기반’과 ‘존재 천착’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가 공간과 인물이 없는 시 등을 해체해 실험극을 만드는 동시에 문학적 텍스트에 기반한 언어의 소중함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인문학적 소양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어렴풋이 이해할 만하다. ‘존재 천착’은 연극미학적인 측면에서 매력 있는 인물을 창조하기 위한 노력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가 작가로 나서지 않는 이상 인물의 재해석을 통해 실현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나는 그와 그의 연극에 ‘수준’이라는 잣대를 하나 더 들이대고 싶다. 이유는 ‘몸으로 난장을 벌이는’ 소위 해체 연극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야메의사’를 본인들은 ‘B급 컬트 정치 풍자 코미디’라고 규정한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B급’이라니.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게 A급은 A급대로 잘 만들고, B급은 B급대로 잘 만들면 된다, 그런데 이성열은 그렇게 하고 있으니 평가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3년간 청운대학교 방송연기학과 부교수로 있다가 본업에 전념하기 위해 부교수직은 내놓고 산업중점교수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극의 위상은 어떤지 물어봤다.

“연극은 없고, 연기는 있다. 연극 장르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작가와 연출가다. 그런데 밥벌이가 안 되니 그런 사람들을 기를 수가 없다. 연극은 인문학적 기초다. 그 다음이 영화와 드라마다. 학생들은 영화산업이나 한류 붐 때문에 연기자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러나 연기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적고, 그 중에서도 연극 배우가 되려는 사람은 더 적다.”

그는 최근 연출가를 중시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연극이 발전하려면 극작가를 양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연극은 극작이 반”이라고 단언한다.

“옛날에는 1급 작가들은 모두 시인이나 소설가를 지망했다. 그러나 지금은 방송작가가 최고 인기가 있다. 문예창작과도 요즘엔 교수로 극작가를 우대하는 데 1급 방송작가들은 오지도 않는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극작가들도 곧바로 영화사나 TV방송국에서 데려간다. 모두가 배고플 때는 안 갔는데 지금은 그쪽이 잘 나가니 가는 것이다. 극작가 양성에 많은 지원을 해 왔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설령 좋은 극작가가 있다고 해도 지키기가 힘든 형편이다.”

그는 왜 그렇게 힘든 바닥에서 살고 있는 걸까. 그는 연세대 사학과에 입학해 대학의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며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것은 할 게 없었다고. 그는 대학 졸업 후 극단 목화(대표 오태석)에서 연기와 연출을 배우고, 제대를 해서는 극단 산울림(대표 임영웅)에서 연출을 익히며 산울림 소극장의 극장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나중에 극단 창단과 연출에 도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꿈은 전용극장을 갖는 것이다. 이유는 “극단과 함께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고, 목적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로 행복해지고 싶어서”다.

이성열은 극단을 만들고 첫 작업을 할 때의 분위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첫 출발은 다 인연이라고 했지, 우연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다보니까 얼렁뚱땅 만나서 그게 숙명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산 거죠”(‘극단 백수광부를 말하다’).

그와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뒤적이며 느낀 게 하나 있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말도 서슴없이 한다는 것. 그게 웃음과 신뢰를 불러온다. 예를 들어 “그 때는 그럴 실력이 없었다” “왜 상을 주는지 몰랐다” “예상대로 쫄딱 망했다” 등등.

사실 ‘야메’라는 말은 우리 사전에 없다. 일본어 ‘야미(闇)’의 잘못이다. 그렇지만 ‘야미’라고 해봤자 의미도 통하지 않고, 말맛도 살아나지 않는다. 연출가란 무엇인가. 자신의 문법대로 ‘야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 아닐까.

인연이 숙명이 된 극단 백수광부와 이성열의 만남은 앞으로도 시계추처럼 이 작품 저 작품을 오갈 것 같다. 이성열이 “좀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겠다”는 약속을 지킴으로써 한국 연극의 저변을 끌어올리고 관객의 발길도 붙잡아 주길 기대한다.

(본인이 말하는 주요 연출작은 다음과 같다. ▽연극 ‘햄릿아비’ ‘벚꽃동산’ ‘과부들’ ‘봄날’ ‘여행’ ‘그린 벤치’ ‘자객열전’ ‘미친극’ ‘키스’ ‘야메의사’ ‘굿모닝? 체홉’ ‘햄버거에 대한 명상’ ▽무용 ‘비천사신무’ ‘두 도시 이야기’ ‘유랑’ ‘운수좋은 날’ ▽음악 ‘톨스토이 IN Music’ ‘드라마가 있는 음악회’ ‘파가니니&리스트’ ‘죠르쥬’ ▽오페라 ‘손탁호텔’(협력연출))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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