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여제 “부상은 스키의 일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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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평창 테스트 이벤트 출전 린지 본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로 4일부터 열리는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린지 본을 2일 숙소가 있는 강원 평창군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본은 지난해 11월 어깨를 다친 후 아직 오른손으로 폴을 제대로 쥘 수 없다. 본은 올 시즌 내내 테이프로 오른손과 폴을 감고 경기에 나선다. 하지만 본은 “올림픽 시즌 때는 테이프 없이 경기에 나설 것”이라고 낙관했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로 4일부터 열리는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린지 본을 2일 숙소가 있는 강원 평창군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본은 지난해 11월 어깨를 다친 후 아직 오른손으로 폴을 제대로 쥘 수 없다. 본은 올 시즌 내내 테이프로 오른손과 폴을 감고 경기에 나선다. 하지만 본은 “올림픽 시즌 때는 테이프 없이 경기에 나설 것”이라고 낙관했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모두가 올 시즌 내 복귀는 어렵다고 했다.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미국 콜로라도 주 코퍼 산에서 훈련하던 ‘스키 여제’ 린지 본(33·미국)의 오른쪽 어깨뼈가 완전히 부러졌을 때 전문가들은 ‘이번 시즌은 물론이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도 쉽지 않다’는 전망을 내놨다. 한때 1위를 질주하던 세계 랭킹은 공백 탓에 현재 38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본은 지금 강원도에 있다.

4일부터 강원 정선에서 평창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로 열리는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월드컵 활강, 슈퍼G(슈퍼대회전)에서 본은 언제 다쳤느냐는 듯 또다시 우승을 노린다. 최근 식중독을 겪었지만 회복됐다.

지난번 부상으로 긴급수술을 받고 눈을 뜬 본은 오른손에 어떠한 감각도 없었다. 어깨뼈가 부러지면서 손과 연결된 신경까지 손상됐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아예 오른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양치도 왼손으로, 카드 서명도 왼손으로 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 쏟은 시간만 하루 5시간이었다. 그렇게 두 달간 오른손 운동으로만 300시간을 보냈다. 매일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손의 근력, 유연성 훈련을 반복했던 나날이었다.

“손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몸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지난 5년간 부상이 많아 실망도 컸고 화도 많이 났다. 하지만 부상은 내가 하는 일(알파인 스키)의 일부다. 늘 일어나는 일이니 그저 내가 할 일은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죽어라 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이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월 복귀 후 두 번째 실전이었던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월드컵에서 본은 통산 77번째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오른손에 힘이 없어 손에다 폴대를 테이프로 감고 탔다. 이미 여자 알파인 스키선수로서 월드컵 통산 최고 우승 기록 보유자인 본은 이제 9번만 더 우승하면 남자부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스웨덴)가 세웠던 월드컵 통산 최다승(86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여기서 1승을 더 보태면 최다 기록이다.

이번 오른쪽 어깨 수술 자국까지 포함해 알파인 스키의 역사를 써오는 동안 본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남았다. “오른쪽 무릎, 손가락, 어깨, 왼쪽 무릎에도 있다. 등에도 있고(웃음). 하지만 이런 상처가 불편하진 않다. 그저 ‘내가 또 한 번 이겨냈구나’ 생각하게 해준다.”

지난해 5월 미국 켄터키 더비가 열린 켄터키 주 루이빌 처칠 다운스 경마장
자선 갈라쇼에서의 린지 본. 미모의 본은 각종 모델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5월 미국 켄터키 더비가 열린 켄터키 주 루이빌 처칠 다운스 경마장 자선 갈라쇼에서의 린지 본. 미모의 본은 각종 모델로도 활동했다.
말 그대로 영광의 상처인 셈. 본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활강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는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그녀에게 평창은 무려 8년의 기다림 끝에 맞는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지 모른다. “4년 뒤면 난 37세다. 다시 올림픽에 나서긴 어려운 나이 아니겠나. 올림픽에 다시 서기 위해 8년 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최소한 메달 한두 개는 따고 싶다.”

2013년 10월 골프 프레지던츠컵에서 미국이 5회 연속 우승할 때 린지본(왼쪽)이 당시 연인이던 우승 주역 타이거 우즈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3년 10월 골프 프레지던츠컵에서 미국이 5회 연속 우승할 때 린지본(왼쪽)이 당시 연인이던 우승 주역 타이거 우즈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연인 관계로 화제를 뿌렸던 본은 평창 올림픽의 유일한 외국인 홍보대사다. 직접 올림픽의 홍보대사에 자원했을 만큼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하지만 본은 홍보대사로서 자신이 할 일은 “그저 더 빠른 속도로 스키를 타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상이 또 오지 말란 법은 없지만 난 늘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 그게 곧 홍보대사로서 내가 알려야 할 올림픽 정신이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린지 본#평창 테스트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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