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너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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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과학자들, 4월 첫 직접관측 도전

‘블랙홀’이라고 하면 까맣고 거대한 구멍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블랙홀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블랙홀은 빛조차 흡수해 버려 직접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나 논문에 등장하는 블랙홀 모습은 모두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상상도다. 블랙홀의 형태와 성질을 예측하는 이론도 학자마다 다르다.

최근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의 과학자들이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보기 위해 뭉쳤다. 바로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다. 남극, 미국 하와이, 칠레, 프랑스 등 세계 9곳에 설치된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연동해 지구 크기의 거대 망원경처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첫관측은 다음달 시작돼 2주간 진행된다.

○ 블랙홀 가장자리 관측해 존재 증명…첫 타깃은 ‘궁수자리 A*’

이벤트 호라이즌은 블랙홀의 가장자리를 의미하며, ‘사건의 지평선’으로 번역된다. 사건의 지평선을 경계로 안쪽에 있는 블랙홀은 모두 검게 보인다. 이 때문에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은 경계를 집중 관측하게 된다. 관측 불가능한 블랙홀 대신 블랙홀의 아주 가까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관측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예측한 블랙홀 상상도. 다음 달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의 과학자들이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를 통해 블랙홀 직접 관측에 처음으로 나선다. 세계 9곳에 설치된 전파망원경을 서로 연동해 블랙홀의 가장자리가 원형 고리 형태로 빛나는 ‘블랙홀 그림자 현상’처럼 블랙홀 인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을 관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블랙홀의 존재를 입증할 계획이다. 유튜브 화면 캡처
과학자들이 예측한 블랙홀 상상도. 다음 달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의 과학자들이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를 통해 블랙홀 직접 관측에 처음으로 나선다. 세계 9곳에 설치된 전파망원경을 서로 연동해 블랙홀의 가장자리가 원형 고리 형태로 빛나는 ‘블랙홀 그림자 현상’처럼 블랙홀 인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을 관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블랙홀의 존재를 입증할 계획이다. 유튜브 화면 캡처
대표적인 것이 ‘블랙홀 그림자 현상’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연구그룹 선임연구원은 “블랙홀이 주변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며 광자(光子)를 흡수할 때는 가장자리가 원형의 고리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홀에 끌려 들어가지 않고 맴도는 빛(광자)에 의해 블랙홀의 경계선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뜻이다. 은하의 중심에서 거대한 원형 고리가 관측되면 블랙홀의 존재가 입증되는 셈이다. 만약 원형 고리의 한쪽 반원이 밝고, 다른 쪽 반원이 어둡게 보인다면 블랙홀의 자전 현상도 증명 가능하다.

첫 번째 타깃은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초대형 블랙홀 ‘궁수자리 A*’이다. 지구에서 약 2만8000광년 거리로 가장 가깝다. 그 다음 타깃은 약 5446만8000광년 거리의 ‘처녀자리 A*’이다.

○ 지구 크기 망원경, 분해능 ‘100만분의 1도’에 도전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은 세계 각지의 최첨단 전파망원경으로 하나의 천체를 동시 관측해 분해능(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구별하는 능력)을 높이는 ‘초장기선 간섭계 기술(VLBI)’을 활용한다. 전파망원경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길고 장거리 전달이 잘되는 전파 대역 신호를 관측한다. 먼 우주까지 관측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크기 광학망원경보다 분해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전파의 간섭현상을 활용해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을 하나의 집합체로 연동해 사용한다.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관측망(ALMA)’. 64개의 전파망원경이 연동돼 있다. 최초로 블랙홀을 관측하는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에 활용되는 9곳의 천문대 중 하나다. 한국천문연구원은 ALMA와 미국 하와이 섬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을 통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아메리카스페이스 제공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관측망(ALMA)’. 64개의 전파망원경이 연동돼 있다. 최초로 블랙홀을 관측하는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에 활용되는 9곳의 천문대 중 하나다. 한국천문연구원은 ALMA와 미국 하와이 섬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을 통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아메리카스페이스 제공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은 이를 지구 차원으로 확대한 셈이다. 미국 하와이 섬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과 멕시코 푸에블라 주 ‘대형 밀리미터 망원경(LMT)’,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관측망(ALMA)’, 프랑스 뷔르 고원 ‘북부 확장 밀리미터 관측망(NOEMA)’, 남극의 ‘남극점 망원경(SPT)’ 등이 포함됐다.

단일 전파망원경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 분해능은 약 6도(관찰자를 기준으로 두 물체가 떨어진 각도) 수준이지만,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의 경우 분해능이 100만 분의 1도로 600만 배가량 높아진다. 같은 시각, 서로 다른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블랙홀의 전파 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해 이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얻는 게 목표다. 첫 블랙홀 영상은 올해 말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 한국, 일본과 공동으로 별도 전파관측망도 활용


국내에서는 천문연이 9곳의 천문대 중 JCMT와 ALMA에서 블랙홀 관측에 참여한다. 천문연은 같은 기간 일본국립천문대와 공동 운영하는 ‘한일 공동 전파관측망(KaVA)’도 별도 가동한다.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은 1∼3mm 파장 대역의 전파를 관측하지만, KaVA는 이보다 긴 7mm와 1.3cm 파장 대역의 전파 신호를 수집해 관측 결과를 보완한다.

손 연구원은 “그동안은 블랙홀이 강력하게 내뿜는 것으로 알려진 제트 현상만 멀리서 관측하며 블랙홀의 존재를 가늠해 왔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만약 그동안 예측해온 블랙홀의 모양이 실제와 다르다 해도 블랙홀에 관한 이론을 개선하고 우주의 탄생과 진화의 비밀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블랙홀#블랙홀 그림자 현상#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관측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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