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빠진 EU ‘유연한 통합’으로 방향 전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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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커 집행위원장 ‘미래 백서’ 발표… EU 앞길 5가지 시나리오 제시
창설 60년만에 처음 통합속도 조절… 국가별 정책 자율성 확대 검토
3월말 로마정상회의서 본격 논의

유럽연합(EU)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통합의 속도를 줄이고 개별 국가에 힘을 돌려주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U 집행위원회는 1일 통합을 단일시장에만 국한하는 안을 포함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5가지 시나리오가 담긴 ‘유럽 장래에 대한 백서’를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이 제시한 5가지 안 중 단지 2개만 통합이 가속화되는 안”이라며 “처음으로 EU의 힘을 각 국가의 손에 돌려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융커는 이날 유럽의회에 출석해 “EU는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도 “이제는 유럽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해야 할 때이며 어떤 때는 덜 하는 게 더 많이 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속도 조절에 방점을 찍었다. 브렉시트 이후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반(反)EU를 앞세운 극우 포퓰리즘 열풍과 보호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을 감안한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5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다층체제(multi-speed)’ 통합 안이다. 그동안 28개 회원국 중 9개 국가가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있고, 별도 비자 없이 국경을 자유롭게 다니는 솅겐조약에 6개 회원국이 가입하지 않고 있지만 목표는 단일 통합이었다. 다층체제안은 국가별로 혹은 분야별로 통합의 수준을 다양하게 하자는 안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모든 회원국이 같은 단계의 통합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했고,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우리는 유연한 연합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 안에 찬성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갈등 요소가 많다. 당장 영국의 탈퇴 이후 줄어든 EU 예산 속에서 다층체제가 이뤄질 경우 어느 분야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할지를 두고 갈등이 커질 공산이 크다. 동유럽 국가에서는 서유럽 국가들이 각종 경제적 지원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U가 어젠다 수를 줄이고 그 대신 통합의 강도를 높이는 안도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기술 혁신, 무역, 안보 등은 EU에 더 많은 권한을 주되 지역 발전, 건강, 고용, 사회 정책 등은 국가 자율에 맡기는 안이다.

단일시장에만 주력하고 이민, 보안, 국방 협력은 아예 보류하며 국경도 사실상 부활하는 안도 포함됐다. 독일은 이미 이 안에 명확하게 반대한다는 뜻을 융커에게 전달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5가지 안은 이달 말 로마에서 열리는 EU 창설 6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며 유럽의회 선거가 열리는 2019년 6월까지 결정할 예정이다.

1957년 3월 EU 창설의 모태가 된 유럽경제공동체(EEC) 설립을 위한 로마조약이 맺어진 이후 60년 동안 유럽은 통합을 향해 앞만 보며 달렸다. 당시 6개국이었던 회원국은 28개로 늘어났고 통합 분야도 경제에서 정치, 사회로 확대됐다. 하지만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로 대전환점을 맞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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