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컬처]중견 여배우는 왜, 좋은 엄마-억척 아내로 복귀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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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왕년의 女스타’ 활용법

1990년대 대표 여배우들이 아내로, 엄마로 속속 TV 드라마에 복귀하고 있다. 왼쪽부터 ‘굿 와이프’에 출연한 배우 전도연, ‘사임당 빛의 일기’의 이영애, ‘완벽한 아내’의 고소영. 각 방송사 제공
1990년대 대표 여배우들이 아내로, 엄마로 속속 TV 드라마에 복귀하고 있다. 왼쪽부터 ‘굿 와이프’에 출연한 배우 전도연, ‘사임당 빛의 일기’의 이영애, ‘완벽한 아내’의 고소영. 각 방송사 제공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이름을 날린 ‘언니들’이 대거 TV 드라마로 복귀하고 있다. 지난해 ‘칸의 여인’ 전도연(44)이 11년 만에 tvN 드라마 ‘굿 와이프’에 출연한 데 이어 한류열풍 1세대 이영애(46)가 12년 만에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로 돌아왔다. 동료 배우 장동건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뿌렸던 고소영(45)도 10년 만에 복귀해 드라마 ‘완벽한 아내’에 출연 중이다. W.I.C(우먼 인 컬처)요원 에이전트 35(김정은)·에이전트 31(장선희)·에이전트 9(이지훈)는 궁금해졌다. 이들 여배우는 왜 죄다 10여 년 만에 TV 드라마로 복귀하면서 ‘억척 아내’ 아니면 ‘좋은 어머니의 표상’ 캐릭터로 복귀하는지….》
 

요원들은 사실 이들의 캐릭터가 그리 마음에 들진 않는다. ‘무능력’ ‘무관심’ ‘외도’를 필수 옵션으로 장착한 남편 앞에서 이들은 ‘굿 와이프’ ‘완벽한 아내’ ‘사임당’을 자처하고 있으니까. 상황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오히려 궂은 현실에 억척같이 맞서는 캐릭터들이다.

20대에 제아무리 잘나갔던 여배우더라도 ‘경력 단절의 공포’는 이토록 무서운 걸까. 20년 전엔 젊음을 바탕으로 한 진취적인 여성을 연기했다면, 40대 중년 여성이 된 현실 앞에선 억척 아줌마 캐릭터가 정말 최선일까.

전문가 그룹에 자문을 했다. 그중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의 답변이 가장 설득력을 지닌 듯하다. “20대 여성에게 남편의 존재는 여성의 매력을 설명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해요. 반면 40대 중년 여성에게 안정적인 남편이나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건 여성 스스로의 매력을 입증하는 방법 중 하나죠. 우리 사회의 일종의 고정관념이랄까요.”

40대 여성을 연기해야 하는 여배우 입장에선 남편이란 옵션은 캐릭터의 매력도를 높이는 요인이란 설명이다. 한국 사회에서 중년 여성에게 요구하는 여러 기대치 중 하나가 바로 누군가의 ‘아내’ ‘엄마’이기 때문이다.

음…. 그렇다면 좀 더 ‘화려한’ 아내, 엄마 캐릭터일 수는 없을까. “3040 여성들에게 ‘워너비’ 스타였던 여배우들이잖아요. 20대 여배우만 로맨스 장르를 연기하고, 40대 중년 여배우는 억척 아줌마 역할에 머물러야 하나요?”라고 여기저기 물었다. 여기저기서 “거 참, 뭘 모르신다’라는 반응이 몰려 왔다.

전문가들은 40대 여배우들이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고 억척 아줌마 캐릭터를 선택하는 이면에는 전략적 판단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PD 발언을 전한다. “40대 여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울 때 독립적인 여성으로 그리려면 ‘골드미스’라는 뻔한 소재를 써야 해요. 하지만 엄마, 아내 역할로 풀어나가면 스토리가 풍부해지죠. ‘찌질’하고 나쁜 남편 캐릭터가 억척스러운 아내 캐릭터를 빛나게 해주는 거죠. 제작사나 배우 모두에게 윈윈이죠.”

10년간의 공백 동안 이들이 주로 CF 모델로 활약하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한 것도 억척 캐릭터라는 승부수의 한 이유라는 분석도 있었다. “오랜 공백기가 있었더라도 사람들 인식 속엔 여전히 톱스타예요. 시청자들이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 돼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내, 엄마 역할이 그런 점에선 쉽죠.”(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또 다른 반론들도 나왔다. “여배우들이 언제까지 산소 같은 여자로만 ‘소비’돼야 하냐” “과거와 달리 직장과 가정 모두 충실하게 꾸려가는 진화한 아줌마 캐릭터는 배우와 시청자 모두에게 매력적”….

반면 직장인 김민주 씨(43)도 ‘완벽한 아내’에 대해 “배우 고소영 하면 워낙 1990년대 톡톡 튀는 세련된 도시 여성 이미지가 각인돼 있어서인지 좋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어색했다”고 했다. 실제 이 드라마의 27일 첫 회 시청률은 3.9%(닐슨코리아)로 저조했다. 이영애의 ‘사임당…’도 동시간대 경쟁 드라마인 ‘김과장’에 시청률 1위 자리를 몇 주째 내주고 있다.

40대 여배우가 40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뭐가 어색하느냐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의 모습에 대한 추억과 환상 때문일까, 못내 아쉽다.

자, 현재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걸그룹 트와이스, 아이유가 20년 뒤 트로트를 부르거나 억척 아줌마로 나오면 어떨까.

김정은 kimje@donga.com·장선희·이지훈 기자  
#중견 여배우#전도연#이영애#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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