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파란 리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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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영된 ‘너의 이름은.’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흥행기록을 새로 썼다. 360만 명 넘는 관람객 중에는 너덧 번쯤 본 마니아들이 꽤 있었다. 서로 몸이 바뀌는 남녀 주인공 다키와 미쓰하를 연결해 준 것은 머리띠. 전차에서 다키와 마주친 미쓰하가 황망하게 헤어지면서 오렌지색 머리띠를 풀어 던져주며 “내 이름은… 미쓰하!”라고 외쳤다. 다키는 이 띠를 팔찌처럼 손목에 감고 다녔지만 미쓰하는 기억하지 못했다.

▷리본은 원래 매듭이나 장식용 끈을 말한다. 미쓰하가 머리를 묶었던 기다란 띠도, 선물상자를 포장할 때 쓰는 끈도 모두 리본이다. ‘인식(Awareness) 리본’은 특정 사안에 공감하는 이들이 브로치처럼 달고 다니는 일정한 모양의 리본을 가리킨다. 1991년 토니상 시상식에 제러미 아이언스가 에이즈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자를 차별하지 말자며 달고 나온 빨간 리본을 인식 리본 대중화의 첫 사례로 본다.

▷26일(현지 시간)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적지 않은 참석자들이 파란 리본을 옷깃이나 허리춤에 달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해 소송을 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을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에마 스톤은 시상식이 끝난 뒤 화보 촬영 때 뒤늦게 파란 리본을 달기도 했다. 파란 리본은 의료계에서 전립샘암을, 정보통신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각각 나타낸다. 같은 색이라도 어느 분야에서 리본을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미쓰하의 외할머니는 ‘무스비(むすび·맺음 또는 결말)’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실을 잇고 사람을 잇고 시간이 흐르는 것이 모두 무스비’라고 알려준다. 같은 색 리본을 다는 이들은 한마음으로 이어져 있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자주 등장하는 리본은 사회 내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지금 한국이건, 미국이건 리본은 ‘저항의 연대’라는 함의가 더 크다. 뒤틀리고 얽히고 멈추기도 하지만 결국 이어진다는 무스비. 우리에게 ‘무스비의 시간’은 언제 올까.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너의 이름은#인식 리본#무스비#저항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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