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양종구]체육특기자와 공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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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지난달 24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대한체육회 주최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이용식 가톨릭관동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의 주제 발표가 끝난 뒤 한 지도자가 손을 들어 “일선 현장의 얘기를 듣는다고 모이라고 했는데 과연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각 경기단체 및 시도교육청 관계자, 일선 지도자들이 그룹을 나눠 이 교수의 발표에 대해 토론을 벌인 뒤 그룹별로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주최 측은 “당연히 여러분의 목소리가 반영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스포츠 관계자들은 “이번에도 정부가 기준을 정하고 현장은 따르면 된다는 식으로 발표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지난해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이 드러난 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는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아직 정부가 추진하는 개선책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저학력제를 의무화하고 대학입시에 내신성적을 반영하는 등 선수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더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체육인들은 반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선수는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1972년 만든 체육특기자 제도 탓이다. 이 제도에 따라 선수는 학과 성적에 상관없이 경기 실적만으로 대학에 갔다. 엘리트 선수를 체계적으로 양성해 각종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 대한민국이란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자 한 제도였다. 이 제도는 한국을 스포츠 강국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부작용도 많았다. 경기력만 키우면 된다는 인식에 지도자들의 폭력이 묵인됐다. 경기 실적 조작과 입시 부정도 만연했다. ‘운동기계’를 양산해 중도에 운동을 그만둔 선수들 대다수는 물론이고 심지어 세계를 제패한 스타 선수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왔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도 다양한 처방을 내렸다. 일정 학력 수준이 안 되면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하는 최저학력제를 권고했지만 이를 지키는 학교는 거의 없었다. 대학에도 수능과 내신성적을 반영하라고 했지만 ‘경기력’을 우선으로 선발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선수들은 ‘공부하면 피해를 본다’는 생각에 운동에만 매달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이용식 교수는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체육특기자 제도를 전면 개선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체육행정가와 지도자, 선수 및 학부모,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까지 잘못 뿌리 내린 체육특기자 제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을 공부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 다만 발상의 전환은 필요하다.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선수가 되겠다고 작심한 고등학교 이상 학생들에게 속칭 ‘국영수’ 위주의 수업은 의미가 없다. ‘체육창직(체육을 통한 직업 창출)’을 연구하고 있는 오정훈 서울체중 교감은 “체육도 공부의 한 영역이다. 선수들이 운동을 그만둬도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특화된 교육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선수들에게 ‘스포츠 영어’와 ‘스포츠 과학’ 등 체육 분야에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교육을 하면 어떨까. 그리고 대학입시에 이 성적을 반영하면 선수를 자연스럽게 스포츠 전문가로 양성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드러난 문제점만 해결하려는 방식은 오래 못 간다. 45년간 바뀌지 않은 이유다.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체육특기자#최순실#정유라#최저학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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