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중남미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의 한인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의류 유통업을 하던 50대 교민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그는 의류공장을 운영하는 교민 10명으로부터 수억 원어치의 물건을 공급 받은 뒤 사라졌다. 그가 발행한 수표는 모두 부도처리됐다.
1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교민은 알고 보니 한국에 있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부장 최용훈)는 파라과이 교민을 상대로 한화 약 3억1800만 원어치의 수표 40장을 부도내고 도주한 혐의(사기)로 김모 씨(51)를 구속 기소하고 부인 A 씨(46)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2008년 가족들과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 그는 현지 교민들의 도움으로 의류봉제 기술을 배워 정착했다. 2013년에는 옷가게를 열고 공장을 운영하는 교민들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았다. 판매에 어려움을 겪던 교민들은 김 씨에게 몰렸다. 덕분에 김 씨는 먼저 물건을 받아 판매하고 사후 결제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웠다.
처음 1년은 탄탄대로였다. 김 씨는 대부분의 상품을 판매했고 교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교민 B 씨는 김 씨에게 1억2000만 원어치의 옷을 공급했다. 김 씨는 근처에 지점까지 열었다.
하지만 2014년 말 김 씨는 거래처에 수표를 발행한 뒤 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다. 외상장부를 들고 와 돈을 받으러 온 교민에게는 “장부 확인 뒤 돈을 줄 테니 두고 가라”고 말하고선 장부를 숨기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김 씨는 가족과 함께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과거 교민 사기범의 행선지는 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파라과이 인근 국가의 슬럼지역이었다. 국내외 수사당국의 영향력이 미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브라질을 거쳐 대담하게 고국을 도피처로 택했다. 경찰 조사 당시 스스로 경찰서를 찾은 김 씨는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그를 불구속 송치했다.
보강 수사에 나선 검찰은 외교공조를 통해 현지 피해자의 진술을 직접 확보하고 수표 등 증거자료를 입수하는 등 김 씨의 피의사실을 입증했다. 확인된 피해자 또한 처음 6명에서 10명으로 늘었다. 잠정 피해자가 더 있다고 판단한 검찰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 등을 이유로 10일 김 씨를 구속했다. 파라과이 교민사회에서는 그가 사기로 편취한 돈이 약 200만 달러(한화 약 22억60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잠정 확인된 추가 피해자만 최소 17명 이상”이라며 “추가 수사를 통해 김 씨의 혐의를 끝까지 밝혀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배중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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