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한국 블로그]프리미어리그 못지않은 K리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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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벌써 3월이다. 날씨가 포근해지고 있고, 목련 꽃봉오리도 한두 개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축구광인 나에게 3월은 봄의 시작이 아니라 K리그 새 시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국 사람이 축구를 사랑하듯 나도 축구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내가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도 어떻게 보면 축구 덕분이다. 나의 부모님은 축구장에서 처음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셨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까지 4대가 모두 같이 축구장을 다녔다. 모두 나의 고향인 셰필드의 홈 팀인 셰필드 웬즈데이를 응원한 건 두말할 필요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 왔을 때 외국인등록증과 휴대전화 개통보다 먼저 찾아본 것은 바로 축구 경기였다.

TV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을 선호하기에,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자주 찾았다. 2004년에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를 이전하면서 안양 팬을 배신했다는 논란이 있어 FC서울 팬이 되는 걸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어차피 나의 제2의 고향인 서울의 팀이기 때문에 셰필드 웬즈데이와 같은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고 이전 논란으로 다른 팀 팬들이 “북패”(북쪽 패륜)를 외쳐도 나는 자랑스러운 “1000만 명의 수호신”(FC서울 팬) 중 하나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홈, 원정, 해외 경기를 직접 봤고 외국인 팬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FC서울 지지자 연대 수호신의 대의원도 해봤다. 최근 2년간 매주 영어로 된 K리그 팟캐스트도 녹음해왔다. 진짜 K리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K리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축구 얘기를 꺼내면 K리그보다 해외 축구가 더 알려져 있다. 명문 유럽 축구팀이 한국에서 평가전을 할 때 K리그 팀은 홈경기임에도 해외 팀 팬이 더 많아서 오히려 원정경기 같은 분위기가 난다. 슬픈 현실이다.

2002년 월드컵 16강에서 이탈리아와 붙었을 때 시청 앞에서 길거리 응원을 했다. 그때 모였던 100만 명을 보며 K리그의 미래가 밝을 거라 생각했다. 2003년 K리그 시즌 평균 관중 수가 늘어났다고 알고 있는데 요새 경기장이 텅텅 비는 것을 보면 그 많은 팬들이 다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수많은 국내 축구팬들이 해외 축구에 집중하다가 K리그의 매력을 잊은 게 아닐까.

당연히 축구 수준으로 따지면 이브라히모비치가 뛰고 있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나 메시와 호날두가 뛰고 있는 스페인 리그(라리가)가 높다. 하지만 K리그의 플레이 수준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K리그 강팀은 유럽 2부 리그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듯하다. 실제 유럽에서 성공한 선수도 몇 명은 K리그 출신이다.

여기서 K리그의 매력 몇 가지를 말해 볼까 한다. 우선 해외 경기는 TV로밖에 볼 수 없지만 K리그는 경기장의 열기를 직접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유럽의 어느 경기장들과 달리 K리그 경기장 내에서는 훌리건들이 없어서 과격한 욕설이나 싸움 등이 발생하지 않아 애인 또는 가족과 안전한 분위기에서 신나게 관람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유명한 축구선수도 가까이서 직접 보고 사인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하니 언제든 부담 없이 갈 수 있다. 어차피 K리그는 해외 경기 시간과 겹치지 않으니 직접 가 본다 하더라도 손해될 것 없다.

EPL 명문 팀 리버풀의 감독이었던 빌 샹클리의 명언 중에 “사람들은 축구가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축구는 그것보다도 훨씬,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분명히 과도한 표현이지만 팬의 무관심은 K리그의 생사가 걸린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번 주말에 2017시즌 개막전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나도 일요일에 상암에서 열릴 FC서울과 ‘수원치킨윙즈’의 슈퍼매치를 구경하려 한다.

참, ‘여친’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있다. 축구 초보자가 축구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지. 여친이 축구광이 아니라면 20여 경기 가운데 몇 번이나 축구광 남자친구를 따라 경기장에 가야 하는지.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축구#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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