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60>병약한 어머니의 강인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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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 ‘화가 어머니의 초상’.
뒤러, ‘화가 어머니의 초상’.
한 여인이 있습니다. 주름진 얼굴이 모진 세파의 강도와 횟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림 주인공은 바르바라 홀퍼(1451∼1514)입니다. 10대에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나이 많은 금세공사와 결혼을 했고, 혼란스러웠던 종교개혁기 대다수 민중처럼 배고픔과 전염병으로 고통스럽게 살았지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고, 위대한 가문의 일원도 아니었던 여인은 어떻게 이름까지 세상에 전하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자식은 단 2명이었지만 여인은 무려 18명 자녀를 출산했다지요. 그중 한 명이 북유럽 미술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였어요.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은 아들의 삶은 어머니와 달랐습니다. 치열한 과학 탐구와 풍부한 인문 지식에 바탕을 둔 섬세한 미술로 주목을 받았지요. 신성 로마 황제는 독일 뉘른베르크까지 화가를 찾아와 초상화를 부탁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 중에는 그곳 시민이 돼 달라는 간청도 있었어요.

르네상스 정신을 구현한 북유럽 최초 화가 예술에서 자화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림 속 자신을 당당한 인간, 완벽한 예술가로 이상화시켰지요. 그런데 병색 짙은 노모는 미화 없이 그렸습니다. 혹시 어머니를 싫어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화가는 비루한 삶을 말없이 인내했던 일관된 어머니 태도를 무척 존경했습니다.

화가는 초상화 제작 당시 조급했어요. 어머니 죽음은 예견된 상태였거든요. 서둘러 목탄 작업을 완성했지만, 어머니 삶의 외피 너머 실체를 정확하게 충분히 포착해 내었군요. 그것도 당대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가 칭송했던 위대한 ‘검정 선’ 몇 개로 말이지요.

‘알브레히트 뒤러의 63세 된 어머니이다.’ 화가는 단시간에 완성한 초상화 상단에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어머니는 1514년 5월 16일 해지기 두어 시간 전쯤 사망했다.’ 초상화 완성 두 달 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림에 설명도 추가했어요. 자신의 명성과 예술로 사랑하는 어머니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 했던 거지요.

초상화에서 푹 꺼진 양 볼과 뚝 튀어나온 광대뼈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 시선은 힘껏 부릅뜬 눈과 꽉 다문 입술에 머뭅니다. 자신의 운명과 마주한 어머니는 병약할지언정 나약하지 않습니다.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를 똑바로 응시 중인 어머니 눈빛과 태도에서 책임감 있는 인간의 강인함을 발견합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바르바라 홀퍼#알브레히트 뒤러#화가 어머니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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