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학술-예술 희귀 자료… “수십년 연구거리 나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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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헌 日서 무더기 발견]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확인

다산이 직접 쓴 주석? 일본 교토대 서고에서 발견된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 가장본 표지(위쪽)와 본문 일부. 본문 상단의 주석(실선 안)은 다산 본인이나 제자, 후손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
다산이 직접 쓴 주석? 일본 교토대 서고에서 발견된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 가장본 표지(위쪽)와 본문 일부. 본문 상단의 주석(실선 안)은 다산 본인이나 제자, 후손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
“조사 때마다 중요 자료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놀랐죠. 한국학 전 영역을 망라하는 귀중본들이 쏟아졌으니까요.”

박영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최근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의 일본 교토대 조사에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 조사는 2014년 이후 3번째 진행된 것으로 ‘가와이 문고’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자료가 대상이 됐다. 가와이 문고는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1873∼1918) 박사가 수집한 것을 박사 사후 교토대가 구입한 자료다.

○ 완숙한 말년 추사 글씨

“이 도끼 이 촉이 꼭 숙신(肅愼)의 것이라면/동이(東夷)들은 대궁(大弓)에 능하단 게 상상되네”(‘석노시·石노詩’ 중)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추사 김정희의 친필 시첩인 노설첩에 담긴 석노시는 도끼 등 유물을 가지고 땅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읊는 내용으로 고고학자로서의 추사의 면모를 보여준다. 시를 쓴 뒤 ‘秋史(추사)’ ‘金正喜印(김정희인)’이라고 인장을 찍었다. 서첩 소장자는 추사의 동생 김상희의 손자인 김문제(1846∼1931)로 그의 호 ‘위당(韋堂)’이 인장으로 찍혀 있다. 김문제의 손자가 김익환인데 1934년 신조선사에서 추사의 문집을 10권 5책으로 간행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추사가 ‘석노시’와 ‘영백설조’를 각각 쓴 예는 있으나 두 시가 한 서첩으로 묶인 것은 없다. 서첩의 제목 노설첩도 두 시의 제목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 이본(異本) 등장으로 새 연구 필요

이번에 발견된 교토대 소장 경세유표는 11책 완질본으로 책 표지, 장정, 행수와 글자수, 책 상단의 주석 등이 이른바 다산학단의 기존 가장본과 일치한다. 김보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는 “책에 구멍을 뚫는 침장 방법 등은 기존 가장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며 “상단의 주석에 신(臣)이라는 글자가 없는 것 등을 고려하면 가장본 중에서도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장을 통해 추정해 볼 때 이 책은 19세기 중후반 인물인 이겸하(李謙夏)를 통해 일본으로 건네졌고, 다시 가와이 히로타미에 의해 1919년 교토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자료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신조선사에서 다산의 전집을 간행할 때에도 참고하지 못한 자료로 추정된다. 2012년 발간된 여유당전서 정본 역시 이번 발견으로 추가 대조 작업이 필요해졌다.

조선 초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묘법연화경도 확인됐다. 세로 약 27.9cm, 가로 950.6cm에 달하는 쪽빛 두루마리에 금니로 법화경을 쓴 것이다. 국내에 소장된 고려시대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1, 3, 4, 6, 7권 등은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글자의 상하좌우에 흰색의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는 게 이번에 발견된 묘법연화경의 특징이다. 이는 평성, 거성 등 성조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 최대 규모, 최고 수준 탁본 확인

국내 최대 금석문 탁본 금석집첩의 표지(위쪽)와 내용 일부. 이 책에 실린 탁본 2300여 점 중에는 지금은 사라졌거나 마모로 판독하기 어려운 비문이 상당수 담겼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
국내 최대 금석문 탁본 금석집첩의 표지(위쪽)와 내용 일부. 이 책에 실린 탁본 2300여 점 중에는 지금은 사라졌거나 마모로 판독하기 어려운 비문이 상당수 담겼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
영조 시기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1682∼1759)가 전국의 비문을 탁본해 편찬한 금석집첩(金石集帖)의 전모도 드러났다. 이번에 확인된 금석집첩은 219책으로 탁본이 2300점이 넘고, 지금은 사라졌거나 마모돼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비문도 상당수 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금석집첩 39책에는 없는 탁본들로 과거 국사편찬위원회의 교토대 조사에서는 존재만 알려져 있던 것이다.

금석집첩은 왕실 종친, 정승, 고위 관료, 스님 등으로 분류하고 망라했다. 탁본의 수준이 탁월하고, 범위로 보아 국가사업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 조사에 참여한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연구실장은 “현존하는 금석문 탁본 중에 가장 방대하면서도 가장 정제돼 있고 체계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는 2008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원으로 해외 소재 한국 고문헌 자료의 상세 서지정보를 정리하고, 원본 이미지를 고화질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학술 연구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박영민 교수는 “교토대는 자료 조사 요청에 흔쾌히 응하고 서고를 개방했을 뿐 아니라 자체 비용을 부담해 훼손 자료를 수리해 촬영하도록 하는 등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며 “이 같은 협력은 유례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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