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팍스로마나’에 감춰진 로마정치의 이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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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스티/톰 홀랜드 지음·이순호 옮김/726쪽·책과함께·3만3000원

“Hold the line! Stay with me! Roma victor!(대열을 지켜라! 나를 따르라! 로마 만세!)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년)에서 로마군 사령관 막시무스가 게르마니아에서 진격하는 장면은 많은 영화 팬들이 꼽는 명장면 중 하나다. 로마군의 용맹이 남자들에게 내재된 짐승(?) 본능을 일깨운달까. 나는 영화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막시무스의 대화를 특히 인상적으로 봤다. “막시무스 자네에게 로마는 뭔가?” “제가 봐왔던 세상은 잔혹함과 암흑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달랐습니다.” “자네는 로마가 진짜 어떤 곳인지 모르는군.”

이민족 출신으로 사령관에 오른 막시무스가 목숨을 걸고 싸운 이유는 단 하나. ‘팍스 로마나(Pax Romana)’였다. 토머스 홉스가 강조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체험한 막시무스에게 힘을 통한 질서와 평화를 추구한 로마는 일종의 구세주였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 이면에 도사린 로마 정치의 음험함과 패악이 마침내 그를 덮치게 된다. 권력에 눈이 먼 황태자에 의해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고서야 로마의 참모습을 목도한 것이다.

이 책은 카이사르가 세운 로마제국 초기의 부패와 타락을 황제와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적나라하게 서술했다. 예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소설 기법의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읽는 재미를 준다. 저자는 광범한 사료를 인용해 팍스 로마나에 감춰진 로마 정치의 이면을 드러낸다.

카이사르의 양자로 제정(帝政)을 연 아우구스투스는 프린켑스(1등 시민)라는 허울에 숨어 자신을 철저히 포장한 권모술수의 대가였다. 그는 양부 카이사르의 죽음과 폼페이우스, 스키피오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었다. 로마 공화정 500년의 전통을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시민들이 스스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착각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거다. 독재를 우려해 스키피오를 내쳤던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에 이르러선 세습 군주정까지 받아들이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다이너스티#톰 홀랜드#로마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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