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가 만난 사람] ‘힙합 빅대디’ 라이머 “디스? 힙합에 없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2월 24일 0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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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머는 최근 몇 년 사이 힙합을 대중화한 주역으로 꼽힌다. 그가 이끄는 브랜뉴뮤직은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로서 한국 힙합을 대표 하지만, “레이블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아이돌도 론칭할 생각”이라며 새로운 실험을 준비중이다. 사진제공|브랜뉴뮤직
라이머는 최근 몇 년 사이 힙합을 대중화한 주역으로 꼽힌다. 그가 이끄는 브랜뉴뮤직은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로서 한국 힙합을 대표 하지만, “레이블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아이돌도 론칭할 생각”이라며 새로운 실험을 준비중이다. 사진제공|브랜뉴뮤직
■ 힙합 1세대 프로듀서 라이머

힙합은 삶의 태도·패션 등 광범위한 문화
‘비트’란 뼈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 전달
우리말엔 운율·해학 있어 힙합과 잘 통해
20여개 팀 통해 새로운 음악 늘 도전할 것
영향력 큰 ‘아이돌의 레이블’ 론칭도 생각

‘브랜뉴(Brand New)’.

“완전한 새로움, ‘신상’의 의미”라고 라이머(40)는 설명했다. “흑인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라며 스타일리스틱스의 ‘유 메이크 미 필 브랜드 뉴(You Make Me Feel Brand New)’라는 곡을 권한다.

라이머는 힙합을 중심으로 한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이자 제작사 겸 매니지먼트사인 브랜뉴뮤직의 수장이자 프로듀서다. 산이, 버벌진트, 애즈원, 범키, MC그리 등으로 대표되는 브랜뉴뮤직은 최근 몇 년 사이 힙합을 대중화한 주역이다. 라이머를 만났다. 문외한에게 힙합에 대해 정연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모습은, 프로듀서로서 일군 음악적 성과와 회사의 대표로서 거둔 사업적 결실이 단단한 역량에서 나온 것임을 읽게 한다.

-힙합이 뭔가.

“비트의 뼈대 위에서 래퍼가 삶의 태도이든, 자신의 이야기이든 가감 없고 거침없이 실어 전하는 것? 하지만 받아들이는 힙합은 각기 다르다. 패션일 수도, 음악적 형식일 수도, 삶의 태도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아주 ‘센시티브하고 트렌디하고 핫한’, 어떤 전반적인 문화양식이다. 어쨌든 흑인음악과 관련한 주변의 문화가 복합된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비트와 랩에도 형식이 있나.

“많은 흑인들이 음악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남의 음악을 재가공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드는, 샘플링이 초기 많이 쓰였다. 클래식 음악에 드럼만 찍어도 새로운 비트가 됐다. 거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얹게 됐다.”

-그런 흑인음악과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힙합은 다른 것 같다.

“지금의 힙합은 범위가 넓어졌다. 단순한 비트와 랩의 결합에서 그와 관련한-심지어 신조어까지-삶의 태도와 패션, 파생된 수많은 음악 등 광범위한 문화로 변화했다. 에너지와 젊음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가 된 것 같다. 유행처럼 잠깐 왔다 없어지지 않고, 굳건한 장르로 이어질 거다. 다만 스타일이나 표현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랩과 우리말은 잘 어울리나.

“굉장히 잘 어울린다. 옛 시조 등에도 운율과 각운이 있지 않나. 해학과 흥 등 우리 특유의 문화요소도 힙합과 통한다.”

-각운(=라임)은 꼭 맞춰야 하나.

“그게 맞아야 작자가 의도하는 재치와 재미를 줄 수 있다. 라임이 없는 랩은 말 그대로 지껄임에 불과하다. 시도 운율과 각운이 있어야 문학적 평가를 받듯 말이다.”

-왜 힙합일까.

“한국에서 힙합이 대중화한 건, 체감하기로는 최근 5년 정도 됐다. 오랜 시간 감정적인 걸 억누르고, 표현을 참아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어졌다. 노랫말로 함축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걸, 힙합이 직설적인 랩으로 이야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줬을 거다. 빙빙 돌리지 않고 ‘싫으면 싫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거침없음이 짜릿함을 준 것 같다. ‘쇼 미 더 머니’ 등 방송프로그램도 큰 힘이 됐다.”

-방송프로그램이 빚어낸 다양한 논란은 ‘힙합은 하위문화’라는 편견을 굳힐 수도 있다.

“방송프로그램만이 전부라고 생각할까 우려스럽다. 자극적이고 강렬하게 눈에 들기 위해 ‘디스’도 하는 건데. 하지만 힙합 안에 ‘디스’라는 건 없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힙합=디스’라고 생각하거나, ‘쇼 미 더 머니’에 나오는 이만 힙합 하는 사람인 걸로 오해할 수도 있다.”

-프로그램 제작에 상당히 일조하지 않았나.

“제작진과 많은 논의를 했다. 경연 형식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사실 많은 래퍼들이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자칫 왜곡될 수도 있고, 잘 지켜왔던 게 우습게 보일 수도 있고 해서 조심스러웠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아티스트도 많다. TV 속 인물들에게만 시선이 쏠리는 건 오히려 다양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나. 대학에선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는데.

“AFKN을 자주 보며 흑인음악과 랩을 접했다. 앨범 커버에 흑인사진만 있어도 들어보곤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춤에도 관심이 많았고 잘 췄다. 그렇게 자주 들으며 춤을 추면서 음악을 하고 싶다 생각했다. 하지만 노래방이 생기면서 노래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래 안 하면서 나설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래퍼가 됐다.”

-대학은 왜 갔나.

“남다르게 사는 걸 안 좋아한다.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살아야 한다. 신문방송학에 관심도 좀 있었고. 음악을 하든, 뭘 하든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좋을 것 같았다.”

-브랜뉴뮤직은 언제부터인가.

“2003년 솔로 앨범을 낸 시점부터다. 브랜뉴프로덕션에서 27살 때 지마스터를 첫 제작했고, 이후 조PD와 함께 한 브랜뉴스타덤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약 20여개팀의 뮤지션이 소속돼 있다. 전문 레이블로서 한국 힙합을 대표한다.

“지금의 아티스트들이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 힙합과 흑인음악 마니아들이 들어도 정말 잘 한다고 평가하고, 듣고 싶고, 궁금해 하는 레이블이 되어야 한다. 현재 국내외 음악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을 지닌 형태는 아이돌인데, 레이블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아이돌도 론칭할 생각이다. 현재 가시화하고 있다. 우리 레이블의 미래다.”

-완전한 정체성에 도달했나.

“이제 한 페이지를 넘긴 느낌이다. 시장 안에서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게 다음이다. 오래 전에도 색깔 있는 레이블이 있었지만 결국 사장되고 사라지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문화를 주도하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신뢰를 주는 레이블이 되고 싶다.”

래퍼 라이머. 사진제공|브랜뉴뮤직
래퍼 라이머. 사진제공|브랜뉴뮤직

-지금까지 오게 한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글쎄…. 내 자신을 지운 것? ‘라이머=브랜뉴뮤직’만 생각한 것 같다. 돈 걱정 없이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뤘다. 하지만 아직도 배고프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게 많다”

-직원들이 피곤해 하겠다.(웃음)

“요즘 느낀다. 하하! 하지만 때로 대표가 그렇게 열정이 없느냐는 핀잔도 듣는다. 사실 지금까지 음악과 경영을 모두 내가 다 해왔다. 직원들에게 맡기려 하는 편인데…. 14년 전만 해도 날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다 책임지고 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 모든 경험이 너무 큰 도움이 됐지만.”

-절실함인가.

“너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절실함이 갈수록 더 하다. 가도 가도 컴컴하면 차라리 눕겠는데, 조금씩 조금씩 빛이 보이니까 더 달리게 된다.”

-가장 크게 좌절한 적은 언제였을까.

“음…, 사람과 이별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고 수없이 겪으면서도, 흔들리며 상처받지 않아야지 하는데도 말이다. 사람을 좋아한다. 함께 일한 직원이나 아티스트와 이별할 때 힘들었다. 다행인 건 그래도 그만두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다는 거다. 브랜뉴뮤직과 라이머를 대중이 알게 된 건 고작 5∼6년 밖에 되지 않는다. 20년 넘게 음악을 해오는 동안 남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매년 성장하는 나와 회사를 느끼며 즐겁게 달려왔다.”

-지난해엔 브랜뉴뮤직의 이름으로 무려 74장의 음반을 냈다. 가능한 일인가.

“한 주 1.5장씩 낸 셈이다. 프로듀싱한 다른 가수들의 것까지 합하면 더 많다. 그만큼 열심히 달렸다. 버벌진트와 범키 등이 안 좋은 일에 휘말렸지만 그래서 더욱 레이블의 굳건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랬다. 올해는 선택해 집중하겠다. 대표 아티스트인 산이, 범키, 버벌진트 등이 변함없이 자신들의 음악을 하게 하는 것,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신인급 아티스트를 성장시키는 것, 공연과 패션 등 부가사업, 해외 프로모션 등이다. 최근 새벽공방이라는 인디밴드도 서브 레이블을 통해 론칭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두려움은 없나.

“27살에 돈 100원도 없이 회사를 시작했다. 맨주먹에서 여기까지 왔다. 내게 처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하! 뭐가 두렵겠나.”

-결혼도 해야지.

“요즘 부쩍 결혼 생각을 많이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런 얘기라도 안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어진다. 여자친구, 정말 없다! 하하!”

● 라이머

▲본명 김세환 ▲1977년 5월13일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1996년 조&라이머로 데뷔(3년 뒤 크로스로 이름을 바꿈) ▲2003년 솔로. 이효리 ‘헤이 걸’ 작사가 겸 객원래퍼로 알려짐. 브랜뉴프로덕션과 브랜뉴스타덤 거쳐 한국 힙합 1세대 출신 프로듀서로 ‘힙합계 빅대디’로 불리는 브랜뉴뮤직을 이끌고 있음

엔터테인먼트 윤여수 부장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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