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벤처붐 주도 ‘포이밸리’ 부활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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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재 R&CD 특구’에 포함… ICT 젊은 두뇌들 자생적으로 모여
팬택-코캄 등 벤처신화 쓰던 곳… 판교-구로 등에 역할 빼앗겨 쇠락
주민들 “옛 모습 되찾기 기대”


‘포이밸리’는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서울 강남구 개포4동 일대의 옛 명칭은 포이동이었다. 지금은 4, 5층짜리 상가 건물과 다세대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서울의 여느 변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이 일 때만 해도 미국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포이밸리’라 불린 한국 최초의 벤처타운이었다.

서울시가 22일 공고한 ‘양재 R&CD 지역특화발전특구’ 지정 추진 계획에 이곳이 포함되면서 지금의 낙후된 이미지를 벗고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R&CD는 연구개발(R&D)에 기업 간 연계(Connection), 교류(Community)와 문화(Culture)의 의미를 더한 신조어다.

○ 한때 한국 벤처의 산실

개포4동 일대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대기업이 밀집했던 강남구 테헤란로와 가까우면서도 임대료가 싸 1990년대 중·후반 벤처기업이 몰려들었다. 별도의 지원 정책이 수반되지 않은 자생적 벤처타운이었다. 1999년에는 국내 전체 2000여 개 벤처기업 중 450여 곳이 포이밸리에 모였을 정도로 한국 벤처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1990년대 후반 벤처기업 육성촉진지구로 지정됐다. 국내 처음 생긴 벤처기업지원센터도 포이밸리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연구원의 2004년 조사에 따르면 당시 포이밸리의 기업 가운데 전자·컴퓨터·통신기기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49%를 차지했다. 창업자는 대부분 대기업이나 연구기관 출신, 혹은 서울대 공대와 KAIST를 갓 졸업한 젊은 두뇌들이었다. 벤처 신화를 썼던 휴대전화 제조사 팬택과 2차전지 분야의 강소기업 코캄이 이곳을 거쳤다. 명맥은 끊겼지만 마리텔레콤, 한메소프트 같은 당시의 유망 벤처기업도 한때 둥지를 틀었다.

현재 개포4동 일대에는 연구개발 관련 중소기업이 350여 개 있지만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은 아니다. 구로디지털단지, 판교테크노밸리, 상암디지털시티같이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조성된 산업단지가 그 역할을 가져간 탓이다.

이곳에서 20년째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공인중개사 최모 씨는 “당시만 해도 상가 사무실이 모자라 다세대주택까지 사무실로 쓰일 정도였지만 지금은 공실(空室)이 꽤 된다”고 말했다.

○ 옛 영광 되찾을 수 있을까

양재 R&CD 특구는 서울시와 서초구, 강남구가 대기업의 연구단지가 몰려 있는 양재동과 우면동, 개포동 일대 380만 m²를 R&D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사업이다.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되면 특례법에 따라 용적률이 상향되는 등 각종 규제가 완화된다. 서울시는 특구를 4개 권역으로 나눠 R&D 캠퍼스와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중소기업) 혁신 허브 조성 같은 사업 20개를 진행할 예정이다.

당초 계획에는 강남구 개포4동은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이 “포이밸리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반드시 지역특구에 포함돼야 한다”며 주민 청원을 시에 내면서 뒤늦게 포함됐다. 김현기 서울시의원(자유한국당·강남4)은 “포이밸리는 국내 첫 벤처 집적단지였지만 벤처 붐이 수그러든 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으로 쇠락했다”며 “특구 개발이 진행되면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포이밸리#벤처붐#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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